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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낼 것까지는 없잖아요? 즐겁자고 하는 건데

수영

by 바다의별

나는 수영 강습을 세 번 그만두었다. 물론 그건 세 번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수영을 시작했던 건 4살 때였다. 그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는 거의 꾸준히 수영장을 다녔던 것 같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그만두게 되었고, 두 번째로 수영을 시작하게 된 건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였다. 운 좋게도 일찍 취업에 성공해 마지막 학기는 출석 점수만을 위해 다녔기에, 그 여유를 운동에 써보기로 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오전 강습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초급반에 자리가 없다고요?"


하지만 당시에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수영 신규 등록을 향한 경쟁은 어느 동네든 피 튀긴다는 사실이다. 특히 초급반은 오래 머물러있는 분들이 많아서 새로운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자 수영장 직원들은 어릴 때 수영을 했으면 금방 다시 배울 수 있다면서 내게 중급반을 권했다. 그건 센스 없는 내 몸뚱어리를 잘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나도 곧 '그래, 수영 같은 건 몸이 기억한다고 하니까!' 라며 설득되어 그렇게 중급반을 등록했다.


그러나 역시나, 내 몸의 기억력은 좋지 않았다. 중급반에서는 평영을 배웠지만 매 수업 중간중간 초급반에서 배웠을 자유형과 배영을 복습하는 시간이 있었다. 배영과 평영은 어떻게든 따라 하겠는데, 자유형은 아무리 해도 안 됐다. 열심히 팔을 휘젓고 발길질을 해봤지만, 5초 만에 숨이 차 동작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계속 뒤처졌고, 뒤쳐지면 뒷사람도 함께 멈춰야 하니 민폐를 끼치게 되어 스트레스받았다. 결국 나는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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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수영장을 다시 찾게 된 건, 직장인이 된 지 4년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발레를 한창 배우고 있던 때였는데, 여름이 되니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때 한창 했음에도 결국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된 게 못내 억울해, 그렇게 종종 생각이 나곤 했다.


이번에 고른 수영장 역시 신규등록은 현장접수만 가능했다. 마음을 먹은 첫 달엔 갈 시간이 안 되어 포기해야 했고, 그다음 달을 노렸다. 뜨거운 여름날, 퇴근 직후 헐레벌떡 지하철을 타고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초급반 등록에 성공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수영 인생이 시작되었다. 발차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초급반이었으니 부담이 덜했다. 퇴근 후 저녁 반에는 직장인들이 많았고 나이 드신 여성분들도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나름 우등생이었다. 그렇게 발버둥 쳐도 안 되던 자유형이, 호흡하는 법과 발차기와 팔 돌리기를 단계별로 배우고 나니 금방 몸에 익었다. 이제 드디어 호흡을 힘겹게 하지 않아도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었다. 대학생 때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애썼다면, 이번에는 앞사람과 뒷사람의 속도를 배려하는 입장이 된 것이 짜릿하기도 했다. 내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사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마치 아이들을 다루듯 굉장히 친절하게 자세히 가르쳐주었고, 긍정적인 격려 일색이었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만들 뿐 아니라 육지의 영장류도 수영하게 만들었다.


매달 마지막 주에 선생님은 진급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불러주었다. 나는 한 달 만에 중급반 진출에 성공했다. 어릴 때 배운 수영이 몸 어딘가에 남아있기는 했나 보다. 자유형이 제일 어려웠던 나는, 오히려 중급반에서 배영과 평영을 배우는 건 더 수월했다. 역시나 상냥했던 중급반 선생님의 격려와 아주 조금은 가까워진 수강생들 덕에 즐겁고 자신감 있는 한 달을 보냈다. 여기서 한 달을 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웬걸. 이번에도 또 한 달 만에 상급반에 진출해 버렸다.


상급반 첫날,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물속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상급반에서 두 번째 달을 보내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또 저 인간인가 봐."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으니, 마른 남자 강사 한 명이 서 있었다. 싸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던 와중에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스트레칭 똑바로 안 합니까?"


상급반에서는 나비 몸짓의 접영을 배운다. 내 목표는 일상 수영이라 접영은 목표에 없었지만, 두 달간 수영의 재미를 실컷 느끼던 때여서 열심히 배워볼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강사는 그런 마음을 단번에 꺾어버렸다. 굳이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또 굳이 불친절할 필요도 없는데. 그는 스트레칭하라고 호통친 뒤, 인사말조차 없이 곧장 출석을 불렀다. 그다음에는 마치 초등학교, 중학교 수련회의 교관처럼, 무뚝뚝한 표정과 높낮이 없는 말투로,


"자 지금부터 자유형 한 바퀴, 평영 한 바퀴 돌고 옵니다. 아시겠습니까?"


초반에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존댓말이라도 했으니까. 수강생들이 아이들이어도 그러면 안 되지만 심지어 모두 성인인데도 그는 반말을 서슴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틀리면 큰 소리로 호통쳤고 타박했다. 취미로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내가 설사 수영선수라고 해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선수들은 다 이런 취급받으면서 운동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왜 내 돈 주면서 욕먹으면서까지 수영을 하고 있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 달 나는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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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기 위해서 시작한 수영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계속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자유형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하고도 남았기에, 접영을 못해도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내 의지보다는 강사 때문이었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다른 수영장에 갔더라면 접영까지 잘 배웠을까? 접영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보다 결국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조금 더 노력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취미로 배우는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뛰어난 수영 선수가 되기 위해 수영을 배운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즐거움과 안전을 위해 수영을 배운 것이었다. 바닷물에서 해변을 바라보는 일, 바다에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고 파도를 느끼는 일,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어주는 일. 내가 수영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은 이 정도였다. 전문적인 훈련을 요하는 좋은 기록, 고급 기술, 그런 것들은 전혀 아니었다.


이미 학교와 회사에서 충분히 경쟁하며 살고 있는데, 취미마저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취미는 그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활동을 재미있게 하고자 하는 것.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강사한테서 안전과 무관한 이유로 호되게 욕먹어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의 자유시간은 즐기기만 해도 부족하다. 지금도 내가 취미를 선택하는 기준은 오로지 재미다. 즐겁게 배우고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것들로 시간을 채울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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