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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대충 의지하는 건 없다

기타

by 바다의별

한 가지 취미 활동이 새로운 취미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 클라이밍을 한창 하다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발레로 돌아갔던 경우도 있었고, 이탈리아 노래들에 푹 빠져 결국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게 되기도 했다. 취미 생활은 또 새로운 취미 생활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하던 취미를 못할 경우 돌파구처럼 새로운 취미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게 기타는 그렇게 다가왔다.


사실 기타를 맨 처음 시작한 건 첫 직장에 다닐 때였다. 운동 하나, 외국어 공부 하나, 악기 하나를 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운동과 외국어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던 시점, 악기로는 기타를 골라보았다. 어릴 때 피아노도 배워보고 바이올린도 배워봤지만, 성인이 되고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건 처음이었다. 독학으로도 가능한 악기라지만 워낙 음악적인 센스는 없는지라, 학원에 다녔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새로운 세상이 재밌었다.


그리고 방구석에 넣어둔 기타를 다시 꺼낸 건 지난해였다. 그날 오전 폴댄스를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아니면 그날 오후 서울 시내를 뛰어다녀서인지, 갑자기 다리 근육에 무리가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운동을 잠시 쉬어야 했다. 그저 몸의 일부분일 뿐인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답답했다. 나는 뭐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다리 없이 손만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완전히 새로운 악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접근성이 좋은 건 피아노와 기타였다. 나는 기타를 선택했다. 그나마 최근에 배운 것이 기타기도 했지만, 위의 이유로 아무래도 피아노보다는 쉽게 느껴졌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아픔은 겪어야 하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피아노는 양손이 함께 한 마음으로 움직여야 하는 악기였고, 바이올린과 기타는 양손이 따로 움직이는 악기였다. 바이올린을 켤 때 오른손은 활만을 조종해 소리를 내고, 음을 만들어내는 건 온전히 왼손의 몫 같았다. 기타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왼손이 코드를 잡으면서 음을 만들어내고, 오른손으로는 줄을 튕기며 소리를 내는 것. 양손이 전혀 다른 걸 하면 그나마 덜 헷갈리지만, 피아노처럼 양손이 같이 건반 위를 움직일 경우 더 헷갈리기 쉬운 것 같았다. 왼손이 자꾸만 오른손이 치는 멜로디로 따라갔던 것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처음 시작하던 때에 비해서는 수월했다. 의외로 기억나는 코드들도 있었고, 기억나는 기초 곡들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하다 보니 과거에도 겪었던 똑같은 어려움을 그대로 다시 겪어야 했다. 워낙 손이 작아서 하이코드, 즉 왼손가락을 서로 멀리 찢어서(?) 잡아야 하는 일부 고난도 코드들을 잡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예전에도 대충 하다가 말았던 것 같은데, 다시 해봐도 이건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고맙게도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아 주셨고, 나 역시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알려주시는 방식으로 최대한 손가락을 뻗어 잡아보니 조금씩 잡혔다. 그러나 여전히, 맑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스트로크*를 더 자신 있게 쳐보세요.”


나는 먹먹한 소리가 싫어서 자꾸만 왼손만 혹사시켜 가며 코드를 더 정확히 잡으려고만 노력했다. 음을 만드는 건 오로지 왼손의 몫이라고, 왼손이 만든 음을 오른손이 소리로 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왼손으로 코드를 잘 잡더라도 결국 소리를 잘 낼 수 있는 건 오른손의 몫이었다.


코드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스트로크의 방식에 따라 음의 정확도가 더 살아났음은 물론, 곡의 분위기까지도 달라졌다. 힘차게 모든 줄을 한 번에 내리칠 때와 소심하게 조금씩 스치며 칠 때는 극명하게 다른 소리가 났다. 한 줄 한 줄 따로 튕길 때는 물론이고 말이다. 나는 어째서 기타를 어떻게 왼손 하나에만 의지해서 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뿐이 아니었다. 기타를 칠 때 즐거운 일들 중 하나는 좋아하는 노래의 반주를 쳐보는 일이다. 노래를 결코 잘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기타 반주에 혼자 흥얼거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노래로 부르는 멜로디를 고스란히 기타로 치는 경우는 잘 없다. 노래하는 멜로디와 기타로 연주하는 멜로디는 대개 다르다. 멜로디는 둘째치고 박자까지 다르다. 각기 다른 박자의 다른 멜로디가 서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멋진 음악이 완성된다.


그런데 피아노의 오른손을 왼손이 자꾸만 따라 하게 되는 것처럼, 기타를 치는 손도 자꾸만 노래의 박자를 쫓아가게 되었다. 기타를 완벽하게 치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 손만 잘 움직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노래를 하지 않더라도 그에 맞추어 연주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노래 따로, 기타 반주 따로, 예민하게 연습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타는 왼손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른손의 역할도 중요하고, 헷갈리지 않을 머리도 필요하며, 기타를 지지할 두 허벅지도 필요했다.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두 다리만 썼던 것이 아니다. 팔도 쓰고, 배도 쓰고, 등도 쓰고, 기억할 머리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라도 부족해질 때,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다리를 다쳐 운동을 아예 못하게 되어버렸던 그때처럼.


제대로 해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쉬워 보일지라도, 그 뒤에는 훨씬 많은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 손에만 대충 의지해서 되는 건 없다.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걸 주어야 하니까.



*스트로크 : 기타 줄을 손이나 피크를 이용해 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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