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면서 크는 거야, 라고 누가 그랬던가. 꼭 다쳐야 하나 싶어서 썩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지만, 폴댄스는 분명 다치면서 성장하는 운동이었다. 정확히는 ‘멍들면서 성장한다’고 해야 할까.
폴댄스를 시작하기까지 삼고초려를 해야 했다.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을 때는 코로나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어버려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웠다. 1년 반 정도 뒤부터 사람들은 하나둘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나는 갑자기 긴 출장을 가게 되어 강습을 신청할 수 없었다. 출장을 다녀오고 난 뒤에는 발목을 접질려서 또 하지 못했고,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서야 드디어 해볼 수 있었다. 당시 초여름이었던 터라, 폴댄스를 하면 몸에 멍이 많이 든다고 해서 짧은 옷을 입는 여름에 시작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때를 놓치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몰라 바로 저질러버렸다.
하고 싶었던 이유는 딱히 없다. 난 항상 그렇다. 그냥 어느 순간,
‘어? 저거 재밌겠다.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얇은 기둥 하나에 몸을 의지해 빙글빙글 돌고, 한 손에 의지했다가 거꾸로 매달렸다가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특별한 장비 없이 맨손으로 단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의상이 다소 민망하다는 것이 약간의 진입장벽이기는 했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울 땐 배라도 가려지는 옷을 입었고 물 속이라 어느 정도 부끄러움이 덜했는데, 폴댄스는 그야말로 속옷만 입고 몸매를 드러내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폴댄스의 복장도 폴댄스를 직접 해봐야만 몸소 느끼게 될 것이었다. 나는 일단 체험수업부터 신청했다.
다행히 체험수업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가도 된다고 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복장으로 편하게 시작한다고 했다. 복장 진입장벽을 느끼는 것이 나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갔더니 나는 누가 봐도 체험수업을 하러 온 사람 티가 났다. 수업에 온 다른 사람들보다 5배는 더 많은 옷감을 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안전을 위한 매트를 깔고, 내가 그날 사용할 폴 옆에 섰다. 내 몸을 지지할 기둥인데 두께가 생각보다 얇게 느껴졌지만, 막상 한 손으로 잡아보니 손 끝이 서로 닿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양손으로 폴을 잡고 매달려보았다. 클라이밍 할 때 쓰던 것과 유사한 초크를 손에 묻힌 뒤 폴을 손으로 쥐었다. 생각보다도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양 무릎 사이에 폴을 고정시킨 뒤 몸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단한 동작들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힘을 쓰게 될지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계속해서 알게 되었다. 먼저 폴 자체가 이렇게 회전하는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고정시키고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빙그르르 계속 도는 건 대부분 폴이 도는 것이었다. (참고로 고정된 폴은 심지어 더 아프다.) 물론 가만히 놔둔다고 회전하진 않는다. 폴이 회전하는 속도나 세기를 조절하는 건 폴에 매달린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매달릴 때 쓰는 팔이 많이 힘들 줄 알았지, 폴에 접촉되는 살결이 이렇게나 아플 줄은 몰랐다. 허벅지나 팔뚝, 발등 등을 폴에 대고 힘을 주면 그 마찰에서 오는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맨살에서 불이 날 것만 같아서 몇 번이나 눈으로 확인했다. 모든 동작들이 그러한 마찰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노출 의상이 불가피했고, 몸에 드는 멍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짧아진 의상
그래도 처음치고는 잘했는지 선생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특히 힘이 좋다고 해주셨다. 클라이밍으로 다져진 팔근육 덕분인 듯했다. 내가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몸 상태로 폴댄스를 시작했다면, 아마 제대로 매달려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내게 폴댄스를 처음 해보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다만, 클라이밍을 했었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조금 더 칭찬을 들으며 기분 좋게 배우고 싶어서 굳이 말하지 않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체험 수업을 마치자마자 정규 수업을 등록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클라이밍 첫 수업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날도 극심하게 아팠다. 클라이밍은 대부분의 경우 두 발이 어떻게든 벽에 붙어있기는 하는데, 폴댄스는 발이 아무 데도 걸려있지 않기도 하므로, 양팔로 온몸을 지탱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도 해볼 만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드니 재미있었고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에 멍이 정말 많이 들었다. 궁금해하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주니 폭력사건 증거 사진 같다고 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바지나 치마는 늘 긴 걸 입고 다녔으니 허벅지의 멍은 평소에 밖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종종 팔을 폴에 거는 동작을 할 때면 팔에도 멍이 들곤 했다. 시작한 시점이 초여름이라 반팔을 입었을 때는 보이는 부위도 생겨서 때로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에 가보면 가장 쉬운 동작을 하는 나만 온몸에 멍이 들어있고, 훨씬 고난도 동작을 소화하는 다른 사람들의 몸은 깨끗했다. 오래 배우다 보면 살이 단련되어 더 이상 멍이 들지 않는 것일까?
“한 번 멍이 들었던 곳은 다시 들지 않아요.”
선생님께서는 한 번 크게 멍이 들고 나면 더 이상 그 자리에는 멍이 안 든다고 했다. 꾸준히 연습하면서 보니 정말로 그랬다. 비슷한 부위에 멍이 계속 들기도 했지만 그 진하기는 점점 옅어져 갔다. 꾸준히 하면 같은 부위에는 더 이상 멍이 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은 아니지만, 성장하는 모든 것들은 대개 아프다. 아픔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꼼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경우 그렇지가 않다.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 계속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난 뒤에는 그 아픔이 사라진다면, 그래도 살만하지 않을까? 나는 성장할 수 있는 아픔에 감사할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멍도 통증도 사라질 날을 기대하며 참아낼 수는 있었다.
꾸준히 연습했다. 연습하고 또 연습할수록, 그리고 동작을 정확하게 따라 할수록, 같은 부위는 수도 없이 단련되었다. 멍은 점점 옅어져 갔고, 살갗이 폴에 쓸릴 때의 통증 또한 점점 사라졌다. 클라이밍을 할 때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폴댄스도 나의 성장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어쩌면 성장통이란 그런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또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흡사 목욕탕 락커룸 같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의 몸매나 서로의 멍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들 각자 자신만의 성장통을 겪으며,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자신의 폴에 오를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니까.
지금은 안타깝게도 다리 피부를 다쳐서 오랫동안 폴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작하게 되면, 아마 멍이 또 처음부터 다시 새로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다시 시작하고 다시 멍을 맞이할 것이다. 언젠가 옅어질 거라는 걸 아니까. 이번에 옅어질 때는 더 단단한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