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키티 테이트 & 엘 테이트)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주중에 저녁을 때우는 대부분의 방법은 '잔반처리'랄까, '강제사육'이랄까. 음식이란 게 내겐 가끔은 허기를 지우기 위한 수단뿐이기도 하고... '주는 대로 먹자'가 안온한 가정생활을 위한 백계명 중의 하나이다 보니 무채색 입맛으로 살기 일쑤다. 특히나 안타까운 사실은, 나이가 들수록 소화력이 떨어지는지 무턱대고 먹다가는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아니고 얼마 먹지 않아도 체중계에 올라가기가 두려워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은 혀끝에 남아 애써 찾게 되는데, 지난주에 방치되어 있길래 무심코 집어 들었던 식탁 한 구석의 치아바타가 그러했다. 분명 강력분, 물, 소금, 이스트가 치아바타 구성성분의 대부분 일 텐데 (뭐 물론 설탕이며 올리브유 정도는 표면장력으로 가득 찬 물 잔 위에 떨어뜨리는 물방울 한 땀 정도의 느낌으로 들어가긴 하겠지만) 그 단순한 조합만으로 마법을 부린 게 느껴졌달까. 이내 아내에게 출처를 묻고 주말에 그 마법사(?)를 찾아 나섰다.
세 사람이 들어가면 민망해지거나 친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은 가게 공간의 삼면을 가득 채운 식사용 빵들. 집게와 쟁반을 집어든 두 눈이 바빠진다. 치아바타뿐 아니라 깜빠뉴며 바게트, 식빵, 포카차, 라우겐처럼 밋밋하달까 딱딱하달까, 내 취향이 한가득 놓여있어 한 번 놀랬고, 계산대 뒤로 가득한 사장님의 트로피며 상장들과 일본어로 쓰인 베이커리 서적들에 두 번 놀랬고, 진열대 사이사이에 놓인 영롱한 자태의 샤워도우에 세 번 놀랬더랬다.
샤워도우.
살면서 기억에 남는 세 가지 빵이 있는데, 그 첫째는 어릴 적 가내수공업으로 바쁘셨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시켜 만들어 낸 머랭을 밥솥에 담아 사랑하는 만큼 부풀려 올린 카스텔라요, 둘째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였던 전 직장의 관능평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입에 담았던 따끈한 에그크로켓이요, 마지막이 바로 『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 』라는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된 샤워도우다. 그런데 내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샤워도우를 먹어본 적이 있던가. 특유의 시큼함을 담으려면 이스트가 중요하고, 그 이스트를 계속 유지하는 게 그렇게나 어렵다던데. 키티와 엘 덕분에 알게 되어 내적친밀감만 가득한 마법 같은 녀석이다.
키티 테이트와 엘 테이트는 영국의 와틀링턴이란 지역에 살며 빵을 굽는 딸과 아빠다. 주변 모두를 웃게 만드는 열네 살 키티에게 찾아온 영문을 알 수 없던 우울과 공황장애로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아빠인 엘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옥스퍼드를 그만두는데. 낫기 위해, 어떻게라도 살아내고자 우연한 기회에 치댄 밀가루 반죽이 키티와 엘에게 희망을 보탠다. 무얼 바라지 않고 이웃들에게 나눔을 하던 빵에서 정말 우연한 기회로 가게를 오픈하기까지의 치유 과정을 키티와 엘이 번갈아 가며 써 내려간 마법 같은 에세이다.
한아름 담아 온 샤워도우는 사장님 말씀대로 시큼하진 않았지만, 송송 뚫린 촉촉함은 와틀링턴의 키티와 엘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 두 사람만큼이나, 오늘 하루도 한껏 삶을 껴안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