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기업의 시작
어쩌다 시리즈가 유행이다. TV에서는 ‘어쩌다 어른’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했고 최근 모교 후배들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진로 프로그램 타이틀은 ‘어쩌다 대학생, 어쩌다 졸업’이었다. 나와 퍼스널 브랜딩 작업을 했던 한 네일샵 원장님은 ‘어쩌다 원장’이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 네일 아트가 좋아서 배웠을 뿐인데, 정신차려보니 네일샵 원장이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네일아트를 배울 때 까지는 즐거웠지만 막상 자격을 취득하고 나면 돈을 벌어야 한다. 네일아트라는 분야 특성이 취업보다는 창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 듯 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고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막상 창업을 하고 나니 이름 뒤에 ‘원장’이 붙어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다 보니 원장이 됐어요. 어떡하죠?”
우리의 삶이 목표한 바 대로,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는 게 얼마나 될까? 내 삶을 돌이켜보니 나 또한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간혹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혹은 어쩌다 이렇게 살고 계시나요?’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면 약 3초간 멍-해지고 만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네요. 저도 이렇게 살지 몰랐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의 대답이다.
‘어쩌다 보니’라는 대답은 참 뭉뚱그려진 대답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특별한 일을 하게 된 무슨 큰 계기가 있을 것 같고, 결심을 한 역사적인 순간이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경우도 많다. 연예인들의 데뷔 사연을 듣다 보면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자신이 덜컥 가수가 되었다거나 우연히 길에서 캐스팅되어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별 것 아닌 상황에서 역사적 순간이 탄생하기도 했다. 뉴턴은 우연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냈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그 전에 무수히 많은 고민의 연속인 시간이 쌓여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내가 준비한 굿 타이밍에 찾아 오진 않는 같다. 하지만 시작하는 사람입장에서는 큰 계기와 결정적 이유가 꼭 필요하다. 머릿속에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항상 맴돌고 있다. 막상 시작하자니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고 사무실도 필요할 것 같고 도와줄 사람도 있어야 할 것만 같다. 하고 싶은 마음보다 시작하기 힘든 이유들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언젠가 다 준비가 되면 해야지! 라고 마음먹은 지가 어느덧 수 년 째다.
책을 쓰는 것이 딱 그랬다. 스무 살 중반, 미친듯이 책을 읽던 시절. 수백권을 읽고 나니 문득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말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찾아왔다. 블로그에 써 둔 내 글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 책을 쓸 수준이 되나? 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다. 첫 만남에 출판사 대표님께 ‘제안 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책을 꼭 쓸 테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것이 내 이유였다. 출판사는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못한다고 하는 상황. 몇 달에 걸쳐 고민을 했고 결국 6개월 뒤 한번 써보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후 2년간 내 책은 나오지 않았다. 원고는 무려 200장이나 썼다. 100장씩 두가지 컨셉으로. 힘겹게 100장의 원고를 다 쓴 후, 평소 존경하는 언어학 박사님께 원고를 보냈다. 글에 대한 피드백을 미리 요청 해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보내자 마자 후회했다. ‘이 글로는 책을 낼 수 없어. 아직 턱없이 부족한 글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사님께는 죄송하지만,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하지 말아 달라 요청했다. 내 글이 그렇게 부끄러웠던 순간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박사님께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의 저자 은유 작가님이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서 10주간 글을 피드백 받기도 했고, <태도에 관하여>의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쓰기 특강에 등록해 2주 간 강의를 듣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글쓰기 관련 자료와 책, 강의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 사이 비슷한 시기에 책을 쓰기 시작했던 지인들의 책은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2년간 두 권의 책을 쓴 지인도 여럿 생겼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했냐 vs 하지 않았냐’의 차이뿐이었다. 책을 쓰고 싶었다면 부지런히 쓰면 되는 것이다. 원고가 마음에 안 든다면, 출판사나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뜯어고쳐서 다시 쓰면 되는 것이었고, 출판사와 색이 맞지 않으면 또 다른 출판사를 찾아 투고해 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여기며 시작을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단지 ‘시작했다’는 이유 만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할 시간에, 나도 부지런히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새롭게 이 글을 쓰고 있다.
과연 완벽이라는 게 존재할까 싶다. 아마도 100%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란 평생 어려울지 모른다. 임경선 작가님께서는 글쓰기 강의에서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읽었을 때에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초기에 썼던 글은 지금 보면 이불킥을 하고 싶다 덧붙였다.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다시 보고 이불 킥을 하는 그 순간이 오더라도 처음이 없었다면 결코 그 다음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기억하고 싶다.
과연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 시작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얼마전, 새로운 시작을 알리러 온 한 친구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관련 공부도 꾸준히 해 왔지만 좀처럼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말 하지 않아도 알 법한. 그 누구나 대는 똑 같은 이유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건강상의 이유’였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서 회사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 김에 오랜 기간 꿈꿔왔던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시작할 것이었으면 진작 할 걸 그랬어요. 그 때는 한없이 부족한 것만 보였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지더라고요.”
“우리에게 과연 완벽한 준비가 존재할까요? 아마도 평생 그 순간은 오지 않을걸요? 그냥 저지르는거죠 뭐.”
그때 웃으며 내가 한 말이다.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무엇이든 저질러야 그 다음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지금 나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도 필요한 것은 ‘완벽한 상황’과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 용기 뿐이다.
퍼스널 브랜드 디렉터, 현재 be.star라는 브랜드 매니지먼트와 1인기업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브랜딩 전략을 자문하는 일을 하고 있다.
브랜딩과 마케팅, SNS와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일을 해 오고 있으며, 특히 사람을 좋아해 개인에게 적용하는 퍼스널 브랜딩 일에 뛰어들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으로 '1인기업'과 '퍼스널 브랜딩'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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