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혼자 일하기로 했다.

1인기업의 시작

스물 여덟.  4년의 휴학을 합쳐 8년이나 대학생 신분으로 지냈다. 후배들은 나를 조상님이라 불렀고 한 교수님은 우스갯소리로 군대에 다녀왔냐 물었다. 20대 중반에 졸업을 했다면 (어쩌면) 당연히 취업을 고려했을 테지만 4년의 공백은 나를 늦깎이 대학생에 취업이 두려운 학생으로 만들었다. 자연스레 다양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취업 뿐 아니라 창업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프리랜서가 되어 있었다. 자기계발을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와 창업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열심히 드나들었던 페이스북. 운 좋게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활용한 마케팅 시장이 커지면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제안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주 2회, 60만원. 온라인 마케팅을 맡아 달라는 조건이었다. 몇 번을 거절한 끝에 결국 합류하게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케터라는 역할이 생겼다. 덩달아 취업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막막했던 창업도 더 이상 고려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계가 문제였다. 월 6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퇴사를 준비하며 교육회사를 차린 친구의 제안으로 가끔 강의를 시작했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40만원까지, 건당 돈을 받는 세계에 입문했다. 남는 시간에 틈틈이 한 트레이너의 퍼스널 브랜딩과 온라인 마케팅을 맡아서 진행했다. 수익의 일부를 받는 퍼센트 계약이었다. 다행히 조금씩 성과를 냈고,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굶어 죽지 않을만큼, 딱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동시에 미래를 준비했다. 우연히 알게 된 패션 에이전시의 대표에게 온라인 마케팅을 맡겨 달라 말했다. 출근하지 않는 나머지 주3회, 그 곳으로 출근했다.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달라 말했다. 경력이 없는 나에게는 돈보다 패션회사에서 마케팅을 해 보는 경험이 더 필요했다. 주말에는 4명의 운영진과 함께 비영리 목적으로 독서모임을 운영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매주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다수였지만 우리는 독서모임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교육 프로그램을 런칭할 계획을 세웠다.

 

 IT회사 마케터이자 패션회사 마케터, 강사,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사람, 동시에 독서모임 운영자.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각각의 로고가 박힌 명함은 쌓여갔지만 딱히 내 소속을 말하라면 무어라 집어 말하긴 힘들었다. 아주 가끔 강의를 하러 갈 때면 김인숙이라는 이름 앞에 회사의 이름 대신 블로그 닉네임을 적었다. 아, 그땐 블로거라고 불리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닉네임은 꿈스토커. (지금은 너무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당시엔 정말 당당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프리랜서라 설명했다. 그게 가장 쉬운 단어였고 남들도 잘 알아들었다.

 

강의하는 내 모습

 마케팅을 주된 업으로 삼았지만, 교육을 하고 싶었다. 가끔 강의를 하러 나갈 때 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는 일보다 직접 사람을 대면하는 일이, 좋은 상품을 널리 알리는 일도 보람되지만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느낌이 표면에 와 닿는 교육이 좋았다. 정보만 전달하기보다 마음을 함께 줄 수 있는 일이라 행복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4명의 동료들과 함께 교육회사를 준비했다. 매일 아침 8시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고, 실제 ‘행복한 습관 만들기’(HaHa Project라는 이름으로 happy habit project의 줄임말) 라는 프로젝트도 런칭했었다. 즐거웠고 또 보람되었으나 5명의 생계를 책임져 줄 만한 프로그램과 수익화 모델을 찾지 못했다. 각자가 꿈꾸는 꿈과 비전도 미세하게 달랐다. 결국 비영리 목적의 독서모임만을 유지한 채 각자의 삶을 살기로 했다.

 

 혼자가 되었다고 꿈꾸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함께 하던 일을 혼자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동시에 있었다. 두려움 보다는 설레임이, 걱정보다는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덕분에 ‘한번 시작 해 보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드림브랜딩

 2013년 10월, 한국나이 스물여덟. 그렇게 나만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머릿속에만 떠 다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꿈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업의 브랜딩 전략을 접목시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  <드림 브랜딩>을 시작했다. 포토샵도 다루지 못해 PPT로 힘겹게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 블로그에 모집 공고를 올리고 신청서를 받고 입금 확인 후 안내 문자를 보냈다. 교육을 진행할 장소를 대여해서 교육을 진행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혼자였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두려움은 온데 간 데 없이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일하기 1-2년 차에는 불안하지 않느냐, 대체 무엇을 하려 하느냐와 같은 우려 섞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한 대학동기는 ‘회계사가 싫다면 보험 계리사를 준비하는 게 어떠냐’며 각종 자격증 공부를 권하기도 했다. 잘될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불안감 따위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느라 여념 없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걱정하는 모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믿고 지켜봐 달라, 몇 년만 기다려 달라’ 밖에 없었다.

 

 현장에서는 애송이처럼 보이지 않으려 대표님들과 미팅을 할 때마다 8cm굽이 있는 하이힐을 신었다. 174cm의 키에 8cm가 더해져 웬만한 건장한 남자도 내려볼 수 있는 눈높이를 가질 수 있었다.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위해 원피스 대신 바지를 입고 긴 생머리 대신 짧은 단발로 헤어 스타일을 바꾸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 고민하며 ‘이미지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어느새 혼자 일한 지 6년차. 현재도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하고 있다. 대신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보다 어떻게 불안함을 극복하셨냐는 질문을 받는다. 함께 했다면 분담했을 일을 온전히 내 몫으로 해오며 생긴 스킬들이 나날이 쌓여갔다. 웬만한 홍보 포스터는 뚝딱 만든다.  시간을 쪼개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온갖 온라인 홍보 채널을 운영한다. 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다.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었다. 버벅이던 세금계산서 발행이 능숙 해졌고, 부가세 신고와 종합소득세 신고도 무리없이 진행한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나름 업계 사람들에 대해서는 빠삭해 졌다. 일을 제안받기도, 간혹 제안 하기도 한다. 일한 만큼 돈을 달라 요구하는 것도, 어렵기만 했던 거절을 하는 것도 어느새 꽤 할 만 해 졌다. 물론 여전히 살 떨리는 일이긴 하지만.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가 불안하다며, 도리어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다. 이제는 머리를 다시 기르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입고, 플랫 슈즈를 신고 강의를 하기도 한다. 어리다고, 프로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서도 듣지 않는다. 다른 분들의 교육을 기획하고 열어 주기도 한다. 여전히 몇몇 기업의 마케팅 일을 하지만 받는 금액이 달라졌고, 자문과 컨설팅이 주요 서비스가 되었다. 아주 가끔 진행하던 외부 강의의 횟수는 현저히 늘었고, 심지어 진행하는 건 보다 거절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일이 자리를 잡아가자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서는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아졌다.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혔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의논 할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하지만 적임자를 찾는 것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 만큼 힘든 일이다.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을 줄 자신도, 일을 잘 가르칠 자신도 없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맘껏 쉬고 싶을 때 눈치를 보는 것도 불편하다. 알람 없이 아침을 마주하는 삶, 하기 싫은 일은 기꺼이 ‘No’ 할 수 있는 삶,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언제든 나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삶. 현재의 삶에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일하기로 했다.



김인숙

퍼스널 브랜드 디렉터, 현재 be.star라는 퍼스널 브랜딩 전문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브랜딩 전략을 자문하는 일을 하고 있다.

브랜딩과 마케팅, SNS와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일을 해 오고 있으며, 특히 사람을 좋아해 개인에게 적용하는 퍼스널 브랜딩 일에 뛰어들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으로 '1인기업'과 '퍼스널 브랜딩'을 제시하고 있다.


 * 개인 블로그 : http://bestarbrand.blog.me/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dreamingkis/

 * 유튜브 (뭐해먹고살지?) : http://bit.ly/2Phvn84


브랜드 매니지먼트 be.star

 * 홈페이지 : http://www.bestar.kr

 *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rgram.com/bestar.k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