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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하기의 힘

1인기업의 시작

 스물 일곱살, 대학교를 3년이나 쉬었다. 1년 더 쉬겠다고 했더니 제적상태가 되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면 재입학을 해야 했다. 재입학 신청을 해 둔 상태에서 약 8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동안 무엇을 해야 뒤쳐진 내 대학생활을 만회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향 순천에 내려갔다. 대부분이 그렇게 하듯 토익 공부를 시작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남보다 뒤쳐져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책을 혼자서 읽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다는 말에 독서모임을 찾았지만 마땅한 모임을 찾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직접 만들기로 했다. 순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온라인 카페에 ‘독서모임 하실 분 연락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첫 모임에는 5명이 참석했다. 주최자인 내가 막내였다. 40대 초반 직장인,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대학생, 건축회사 대표, 고등학교 선생님, 보험회사 부지점장님이 함께 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조합이 아니었다. 덕분에 매회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를 만났다. 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고 모임까지 주최한 나를 기특하게 여긴 참가자 분들은 매시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갖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덕분에 ‘전문성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마케팅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는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독서모임을 했기 때문에 막막하게 시작했던 독서가 사람을 거쳐 구체적인 목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2012년 1월, 일단 시작해보았던 독서모임은 서울에 올라온 이후 또다른 형태의 독서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으로 이어져 2019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했던 나는 이전까지 전공 서적과 교수님의 추천도서 이외에는 마케팅 책을 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마케팅 책을 스스로 찾아 읽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유명하다는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책은 구입했다. 도서관에 드나들며 손에 잡히는 대로 마케팅 책을 빌려와 쌓아 두고 읽었다. 책 속에서 영업(세일즈)을 강조하는 글이 자주 눈에 띄었다.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는 판매직 일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외와 학원 강사 이외의 아르바이트를 고려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번쯤 일 해 보고 싶었던 카페부터 집 근처 호프집, 관심있는 브랜드의 의류 매장과 화장품 매장까지 구인공고를 샅샅이 뒤졌다. 고민 끝에 옷가게에서 일 해 보기로 결심했다. 패션회사에서 마케팅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뛰어들려고 보니 겁이 났다. 이력서부터가 문제였다.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꼭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적혀 있었는데, 도대체 아르바이트를 위한 이력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이미 몇차례 호프집 면접에서 탈락한 경험이 나를 더 소심하게 만들었다.


  이걸 어쩌나…… 고민 끝에 아르바이트 베테랑 여동생에게 SOS를 보냈다. 동생은 10대 후반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 온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면접을 보러 가면 항상 바로 채용되는 100전 100승 이력의 소유자였다. 면접에서 자꾸 떨어진다고 말하자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이력서 굳이 안 가져가도 돼. 일단 들어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는 게 핵심이야. 우물쭈물하면 안된다고.” 아르바이트용 이력서는 어떻게 쓰는 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나를 보며 동생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형식적인 것일 뿐이며 일단 들어가서 밝게 인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결과는? 바로 다음날부터 의류 브랜드의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장님은 내가 관련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에 잠깐 고민하셨지만 동생의 말처럼 당찬 모습 때문에 채용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을 배웠다. 한 두 달 일 해보니 사람들이 옷을 사는 수요와 본사에서 공급해주는 물량의 차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의류 브랜드의 경우 미리 유행을 예측하고 옷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아무리 잘 팔려도 공장에서 즉시 추가 생산을 하기가 힘든데 인기 있는 디자인은 전국 매장에서 잘 팔려 매번 수량이 부족하곤 했다. 결국 인기 품목의 수량을 우리 매장이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생각과 사장님의 안목으로 잘 팔릴 만한 옷을 빠르게 체크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물량을 빠르게 확보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근무한지 3월 만에 전국의 모든 매장을 통틀어 매출 4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내 머리로 아무리 다음을 예측하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아도 결코 알 수 없는 다음 스텝이 존재한다. 사실 막상 닥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바로 그 직전까지만 심장이 쿵쾅거릴 뿐이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고 나면 이 또한 아무렇지 않아진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앞 뒤 재지 않고 일단 시작하게 된다. 잃을 건 없다. 독서모임 멤버 모집 글을 올린 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옷 가게 아르바이트 면접에 가서 채용되지 않았다 해도 그게 나에게 큰 상실과 타격을 주었을까? 아마도 서울에 올라와 독서모임을 찾아 가입했을 것이고,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것이다.


 드로잉 클래스를 하고 싶어했던 한 친구가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다 말하길래 바로 진행 날짜를 잡고 모집 공지를 올리게 했다. 머지않아 그 친구는 클래스를 열었고 한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클래스가 진행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그는 이렇게 말 했다.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요. 어렵지도 않고 보람도 있어요. 왜 진작 시도하지 않았나 모르겠어요.” 


 자신을 ‘프로 방황러’라 칭하는 또 다른 친구는 몇 년째 관심 가는 것들을 머릿속에 재고만 있었다.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꽃꽂이를 배우고 푸드 스타일링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장 직업으로 어떻게 연결될 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하나씩 시도해보는 노력을 통해 아주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그녀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끌리는 데에 힌트가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난 몇 년간 온 몸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망설이기보다 끌리는 대로 일단 시작 해 보는 것이 분명히 더 낫다.



김인숙

퍼스널 브랜드 디렉터, 현재 be.star라는 브랜드 매니지먼트와 1인기업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브랜딩 전략을 자문하는 일을 하고 있다.

브랜딩과 마케팅, SNS와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일을 해 오고 있으며, 특히 사람을 좋아해 개인에게 적용하는 퍼스널 브랜딩 일에 뛰어들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으로 '1인기업'과 '퍼스널 브랜딩'을 제시하고 있다.


 * 개인 블로그 : http://bestarbrand.blog.me/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dreamingkis/

 * 유튜브 (뭐해먹고살지?) : http://bit.ly/2Phvn84


브랜드 매니지먼트 be.star

 * 홈페이지 : http://www.bestar.kr

 *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rgram.com/besta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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