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으로 출근하겠습니다.
1년 반을 쉼 없이 회사와 나의 성장에 투자하던 나에게도 또 한 번의 도약의 시기가 찾아왔다. 반반 치킨 마케터가 되기 전에 나는 이제 막 튀겨진 후라이드 퍼포먼스 마케터였다. 좌뇌 우뇌가 같이 발달한 나에겐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대한 역량을 개발할 일이 간절히 필요했다. 당시 내가 보고 있던 너무나도 매력적인 광고를 만든 주인은 바로 내가 다음에 입사한 광고회사였다.
광고학도들에게도 입사가 어렵다고 소문난 이 회사에 감사하게 들어갈 수 있어서 매일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초반에는 해왔던 일의 연장선에 있는 미디어플래닝팀에서 퍼포먼스를 내며 일했지만, 하고 싶던 크리에이티브 일에 대한 검증을 외부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부 TF에 참여하는 것으로 범위를 늘리고, 조금씩 이 분야에 대해 확신이 생기면서 회사에 새로운 팀을 제안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데이터를 다루던 마케터에서, 크리에이티브 끝단에 있는 제작팀으로까지 이동하면서 5년 동안 나의 일의 범위를 가로-세로로 늘렸다. 그러던 사이 회사는 성장했고, 머물고 있던 건물 한층을 쓰던 형태에서 건물 전체를 독채로 쓰는 사옥으로 이사를 했다. 일했던 두 곳의 회사가 모두 성장으로 큰 건물로 이사를 갈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자라난 것처럼, 내가 성공한 것처럼 우쭐하기도 했다. 마치 작은 방한칸을 얻기 위해 60만 원을 들고 상경했던 내가 아파트를 사는 기분이었달까. (아파트는 아직 못 사봐서 정확히는 모른다.)
사옥이 생긴 회사는 멋졌다. 5층짜리 건물 전체가 모두 우리 거였다. 옥상에서 보이는 테라스 뷰도 좋고, 없던 점심식사도 새로 생겼다. 트렌디한 화이트-미색의 벽과 눈 아프지 않은 형광등이 촤르르 켜져 있고. 지하에는 멋진 회의실과 카페처럼 쉬며 회의할 수 있는 라운지, 북 스테이, 회의실, 쉼터도 마련되었다.
이렇게 한 층 업그레이드된 복지에다, 나의 일의 범위를 쭉쭉 늘려준 고마운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머문 지 4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내겐 또 다른 갈증이 시작됐다. 회사는 커가고 있는데, 나는 그만큼 성장을 하고 있는지. 나의 사고와 생각은 그 사이 얼마나 확장이 되었는지. 일의 숙련도가 올라온 나머지 관성적으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내가 바라고 추구하는 노동의 종류와 형태는 어떤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에이전시에 4년이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도 많다. 이쯤 했으면 브랜드로 이직할 때도 됐지- 하며 좋은 회사를 추천해주곤 했다. 하지만, 회사를 정말로 사랑했던 나에겐 4년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다. 회사는 회사지. 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내가 그렇게 전심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가 맞다. 자신의 목표와 회사의 방향성만 일치한다면 나의 업력을 키우면서 안정적이게 돈도 벌 수 있는 곳. 누군가는 자신과 다른 방향성이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에게 회사는 후자이고 싶지는 않았다. 첫 회사가 스타트업이어서 그런지, 팀원들의 마음보다는 대표들의 마음에 자꾸 더 공감이 가는 탓이기도 했다. 이미 다른 방향에 대한 마음이 생겼는데, 그것을 누르고 숨기며 나의 적당한 노동을 제공하며 월급을 받는 형태의 일은 내게는 맞지 않았다. 비현실적이지만, 나는 늘 같은 마음으로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컸다.
다른 방향에 대한 마음은 인지를 했으나,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코어를 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좀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나는 넥스트 회사를 결정하지 않고 올해 4월 회사를 퇴사했다. 회사를 나올 때 다들 나를 뜯어말렸다. 잘하고 있는 일을 왜 그만두는지, 다음 스텝도 없이 어떻게 지낼 작정인지, 도대체 넌 뭐가 그리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나는 걱정해주시는 분들의 얘기가 고마웠지만, 나의 계획은 정말로 '방황 속에서 나를 찾아보기'가 전부였다.
이 결정은 내가 전공을 바꾸기 전, 약대시험을 보겠다 엄마에게 뻥치고 알바해서 유럽여행을 간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결국에 나는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낼 거니까. 그리고 또 잘 해낼 거니까.
무모하지만, 정말로 그런 나를 믿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현재 나의 출근지는 내가 사는 집의 방 한 칸 되시겠다. 결국 내가 처음에 서울로 상경해서 겨우겨우 들어갔던 셰어하우스의 방 한 칸으로 출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5년 전과 완전히 다른 나를 곁들인.
나는 이곳에서 나의 초년의 페이지를 정리하고 있다. 은행에서 규정한 기간에 따르면 60개월까지를 초년생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는 이제 막 사회초년생 딱지를 뗀 노동자다. 나의 초년을 정리하는 일들을 찐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재밌는 프로젝트를 벌리는 것도. 프리랜서의 형태로 일을 해보는 것도. 아무 일 없이 방에 와서 유튜브만 보다가 퇴근을 하는 것도 말이다. 처음엔 멋진 말들로 나를 포장하며, 애써 브랜드의 일을 받고 열심히 프리워커로 지내기도 했었지만, 애초에 나의 계획이던 무계획. 아니 방황기를 잘 나기 위해서 일은 적당히 거절하며 지내고 있다.
새로운 일들을 했다. 웹드라마를 만드는 것, 유튜브 채널을 두 개나 열어보는 것, 브랜드 다큐멘터리 팀의 에디터로 일하는 것, 기록클럽을 운영하며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에세이 레터를 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듣고 싶던 클래스를 실컷 듣는 것, 나의 공간을 꾸며 널리 알리는 것.
나태한 일들도 했다. 아침잠 많은 내가 알람 없이 푹 자보는 것. 낮 시간에 옆 동네 사는 작가님과 브런치를 먹는 것. 성수동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안 가본 가게를 가보는 것. 우리 집 똥강아지 응구를 하루 삼 세 번 산책을 하는 것. 밤새 넷플릭스를 보는 것. 그러다가 미래를 불안해하며 기도를 하는 것.
약대 시험을 보겠다며 뻥을 치고 유럽을 갔던 시기를 생각하면 이제 막 유럽여행에서 돌아오고 있는 길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발걸음이 가벼울까. 여행을 하는 이 기간 동안 나는 후회 없이 나의 롤을 꾸준히 바꿔가며 지냈다. 콘텐츠도 만들고, 브랜드 디렉팅도 하다가, 크리에이터였다가, 백수였다가, 응구 맘이었다가, 유튜버였다가, 에디터였다가, 작가였다가. 그렇게 켜켜이 쌓여 만난 나의 방향성이 이제는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변칙과 위트가 있는 성장을 하는 사람. 글과 영상을 꾸준히 쓰는 사람. 창작물로 잘 먹고 똥 잘 싸는 사람. 사람에게 혹은 브랜드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공간과 사진과 영상과 말과 글에 좋은 것을 계속 담아내는 사람.
아마도 나의 몇 년간의 방향은 이런 쪽으로 향할 듯싶다.
아아. 이제 막 유럽에서 돌아오는 비행기가 뜨는 중인 것 같다.
5년 반 동안 꾸준히 다닌 회사를 나와 갭이어를 가지면서, 나는 이렇게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었다.
1.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며 살고 싶어
2. 따로, 또 같이 프로의 동료들끼리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멋지게 해내고 싶어
3. 일을 하면서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
4. 일 외의 시간을 잘 확보해서 건강한 일상도 영유하고 싶어
5. 아 그리고 낮에는 응구(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싶어
어떤 건 잘했고, 어떤 건 못했다.
불안하고 좌절하고 흔들리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웅크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일터로 출근하면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출근하면서
나를 만났다.
파르르 흔들리던 나의 동공처럼
그럼에도 삐딱하고 선명하게 초점을 맞추는 나의 눈처럼
점점 더 선명해지는 세상으로
이렇게 나의 초년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본다.
안녕, 나의 초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