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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여 영원하라

57산 아침가리계곡 (2022년 7월)

by Claireyoonlee

어느 날은 비가, 또 어떤 날은 햇볕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작년 여름 기온을 찾아보았다. 작년은 그리 덥지 않았고, 그 전해의 여름 기온이 높았다고 했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바람과 지열, 매연으로 도시는 화로처럼 끓어올랐다.


아침에만 해가 들어 밭을 갈 수 있는 곳, ‘아침가리 마을’에 갔다. 산이 성처럼 둘러싸여 아늑하고, 농사해서 먹고살기 좋아서 예전에는 세상의 환난을 피하려고 사람들이 여기로 숨어들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들어가 도착한 아침가리의 숲과 계곡은 냉방 기계로 더위를 피하려고만 하는 사람들과 달리 여름을 그대로 즐기고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산 위 여기저기서 흐르는 물이 모여서 계곡물은 넉넉하고 깊었다. 나무는 잎 하나하나에 힘찬 초록색 근육을 만들어 다부지고 늠름했다.


계곡 트래킹은 처음 해보았다. 계곡을 따라가다가 길이 사라지면 물을 건넌다. 물살이 약하고 수심이 얕은 곳을 찾아 천천히 저어가면 차갑고 거친 민물의 감촉이 전해져 다리에 비늘이 돋을 것 같았다. 처음 들어갈 때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몸서리를 치지만 곧 기분이 계곡물처럼 맑아진다. 바닥까지 빤히 들여다보이도록 물은 맑다. 이끼가 많은 짙은 색 바위는 미끄러워 딛지 않고, 동글동글한 자갈을 밟는다. 물이 지나치게 맑아 그런지, 인기척이 나면 재빠르게 도망가서 그런지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깊이를 가늠하지 못해 가슴까지 물이 올라오면 까치발을 하고 수영하듯이 발을 휘저었다. 떠밀려 가지 않으려고 힘을 다해 버티면 물은 또 순하게 나를 타고 넘어갔다. 우리는 계곡의 너덜길을 걷다가 잔잔하게 고인 물가가 나오면 쉬면서 물놀이했다. 큰 돌을 풍덩 던지면 물이 왕관을 그리며 사방으로 튀었다. 계곡은 우리가 물을 가지고 노는 소리보다 더 큰 함성을 지르면서 흘러갔다.

비 예보가 있어서 계곡 트래킹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 조금만 비가 와도 계곡은 사나운 야수로 변하기 때문이다. 사실 보슬비가 내렸는데도 내려올 때는 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비보다는 햇볕이 적당히 비추었고, 솔솔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녹색 이파리를 흔들다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냉방 기계 없이는 한 시도 지내지 못했는데 쨍하게 차가운 물과 산바람으로만 서늘하게 지낸 하루가 신기했다.

하얀 바위 사이에 돌단풍이 꽂혀 자라고, 보라색 털이 복슬복슬하게 핀 노루오줌꽃이 고개를 숙이고 피었다. 옥색의 투명한 물이 이끼가 양탄자처럼 깔린 바위 사이를 흐르고, 나무는 누가 더 풍성하고 높이 자라나 경쟁하듯이 울창하게 산을 채웠다. 산은 젊음을 발산하며 청춘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지나간 청춘을 여름 산에서 찾았다. 회한은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숲처럼 온 힘을 다해 젊음을 만끽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잘 잊어먹고, 잘 다치고, 가끔은 중병에 걸린다해도 봄이면 살아나는 나무처럼 산에 오면 다시 청춘을 되찾는다. 팬대믹의 고삐가 풀려 여름 계곡에 몰려든 그 많은 사람을 산은 거뜬하게 품었다. 물놀이하는 젊은이들이 지르는 함성이 계곡 소리와 화음을 이루어 퍼졌다.


저녁은 인제의 한 손두부 식당에서 먹었다. 우리는 심심한 밑반찬과 전골이 입에 맞고, 밧줄 하나를 붙들고 함께 드센 계곡물을 건넌 산행이 뿌듯해서 돌아가면서 모두 건배사를 했다. 청춘은 스무 살짜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60이 다 되어도 계곡에서 첨벙거리며 물놀이하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도 청춘이다.


≪하버드 의대 수명혁명프로젝트 노화의 종말≫에서 작가 데이비드 A 싱클레어는 “유전자 지도가 거의 완성되어 가지만 노화유전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인류는 노화를 일으키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파랗게 젊은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한 과학자의 주장을 믿고 싶다. 생명은 영원하지 않아도 청춘은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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