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산 지리산 바래봉(2019년 1월)
눈꽃이 만발한 지리산을 잔뜩 기대했다. 그러나 설화는 눈이 내릴 때만 볼 수 있다. 영상의 날씨에 남쪽의 산에서 눈꽃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예봉산에서 눈을 실컷 보지 않았나. 나는 겨울이 지나가는 지리산을 오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리산 바래봉으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바래봉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 있지만, 우리는 용산 허브마을로부터 시작했다. 철쭉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산길이었다. 몇 개월 후에 진분홍 꽃을 피울 나무는 지금은 가느다란 가지만으로 마지막 찬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우리는 희미한 봄의 희망을 품은 산을 쉬엄쉬엄 걸었다.
바래봉까지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오르면 지리산의 주 능선이 다 보인다.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연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 새걸산, 만복대, 고리봉. 지리산의 봉우리는 저마다 생긴 대로 이름이 있는 사이좋은 형제처럼 어깨동무하고 늘어서 있다. 산꾼들은 대피소에서 숙박하면서 몇 날 며칠을 능선을 따라 이동하며 산을 종주한다. 바래봉에서 사방으로 펼쳐진 수묵화 병풍 같은 능선을 바라보면서 종주를 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히 종주를 꿈꾸다니!
랭보는 열다섯 살부터 지나치게 걷다가 결국 다리를 잘라낸 후에도 목발을 짚고 걸었다. 그는 시 ≪감각≫에서 “나는 멀리 아주 멀리 가리라 보헤미안처럼/자연 속에서 여인과 함께 있는 것처럼”*이라고 시상을 떠올렸다. 나는 끝이 없이 이어진 능선을 보며 한없이 걷고 싶었던 시인과 공감했다. 많은 철학가와 작가는 걷기를 통해 사유하고 작품을 구상했다. 장 자크 루소는 홀로 걸었던 순간 가장 많은 생각을 했고, 여행기를 써놓지 않아서 가장 후회된다고 하였다. 칸트의 산책 시간이 시계만큼 정확했다는 사실은 유명하고, 니체의 글은 걷기를 통해 이루는 휴식이었다.
나에게도 걷기는 은총이다. 차가운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복잡한 일도 아무 일이 아니게 되고, 기운을 얻는다. 높은 산에 올라 성인처럼 거룩한 나무와 풀들이 고요히 자라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유려한 곡선이 이어지는 산의 한 가운데에 서면 나는 한 폭의 동양화 혹은 대하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겨우 몇 줄만 빼놓고 전부가 다 길을 걷는 도중에 생각났으며, 걷기는 내 두뇌를 활성화해서 사고력을 고양하는 무언가가 있다. 즉 한곳에 머물 때는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정신이 작동하려면 내 몸 또한 움직이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매우 추울 것이라고 단단히 준비했는데 햇볕이 따뜻해서 살짝 땀이 났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지 산 아래 연못은 푸르스름하게 얼었다. 얼음이 두툼해 보여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 걸어가려 했더니 친구들이 살얼음이라고 말렸다. 진흙탕투성이가 논인지 밭인지 잘 몰라서 친구들에게 물었다가 그것도 모르냐고 서울 촌뜨기라고 놀림을 받았다. 사실 겨울에는 논에 보리를 심어 밭이 된 논도 있어 구분되지 않았다. 해가 지고 꽁꽁 얼어붙은 산 아랫마을을 떠나며 몸서리치게 봄이 그리웠다.
*감각 –아르뛰르 랭보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아널드 홀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