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산 속리산 묘봉 상학봉(2021년 12월)
충북 알프스는 속리산과 구병산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이른다. (총 4개 구간 439km) 이렇게 높고 깊은 산이 모인 심심산골을 영남 알프스, 호남 알프스처럼 ‘알프스’라고 한다. 2년 전, 영남 알프스의 가지산에서 서둘러 하산하다가 넘어져 다친 적이 있다. 넘어지는 순간 나를 둘러싼 나무가 장승같이 지켜보는 것 같아서 잠시 오싹했었다. ‘알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은 원초적이며 생생하게 살아있다.
속리산의 묘봉, 상학봉은 충북 알프스 서북릉에 있다. 들머리인 묘봉 두부 마을에서 보면 우리의 목표인 둥글고 높은 봉우리 몇 개가 경쟁하듯이 나란히 솟아있다. 오를 테면 올라와 보라 하는 듯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비로봉, 상학봉(834m), 암봉(860m), 묘봉(874m) 4개의 봉우리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만만한 산행은 아니지만, 들어서는 길은 흙길이어서 편안했다. 드문드문 눈이 남아있고, 활엽수의 빼빼한 나뭇가지가 숲을 채우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추위를 견디고 있는 나무가 안쓰러웠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바위는 거대해지고 모양이 다양했다. 절벽은 깎아지를 듯 날카로웠다. 예전에는 사람의 근접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던 산에 이제는 계단을 만들어 비교적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물론 계단의 경사가 하늘을 찌를 듯 가파르다.
거대한 바위의 틈마다 자란 소나무가 가는 잎을 머리카락처럼 흩날렸다. 우리는 바위 사이를 비집고 자란 소나무의 집요함에 대해 감탄했다. 다른 편한 땅을 두고 굳이 열악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지독한 나무다. 암산의 정상 봉우리에는 소나무만 자랄 수 있는 것인지, 다른 나무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뿌리는 바위 속에서 뻗어 튼튼하고,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부는 최초의 바람을 맞아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추사 김정희는 강직한 제자를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에 비유해 칭찬했고,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세한도>의 소나무는 ‘가파른 이념의 힘으로 이 세계와의 불화를 뚫고 솟아오르는 정신의 나무’라고 했다. 속리산 정상 암봉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글이나 그림의 추상화된 나무가 아니라 영원을 순간처럼 바위와 한 몸이 된 자연 그 자체이다. 우리 아파트 앞마당에 자라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생각났다. 건물 사이로 간간이 비추는 볕을 받고 비좁은 인공의 땅에서도 사시사철 푸른 기운을 잃지 않는다. 추사나 김훈 같은 위대한 작가처럼 나도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자식을 응원하듯 나무를 응원한다. 제발 잘 자라다오 하면서.
묘봉까지 네 개의 봉우리를 ‘정복’하고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겨울 한낮의 잠깐 비추는 햇볕에 녹은 얼음장 밑 시냇물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물은 보기만 해도 차갑고 맑았다. 가만히 손을 담가 찬 기운을 느꼈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
들머리는 충청북도 보은이었는데 내려와 보니 경상북도 상주였다. 바이러스 때문인지 널따랗게 조성한 공원은 썰렁했다. 조금 일찍 하산해서 식당에서 뜨끈한 밥을 먹으려 했는데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가져온 컵라면으로 만족했다. 한때는 북적였을 마을은 스산하고 쓸쓸했다. 2021년이 딱 하루 남아서 더 그런 것일까. 우리는 맥주 한 캔을 부딪치며 올해 마지막 산행을 무사히 끝냈음을 축하했다. 썰렁했던 산 아랫마을의 분위기가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훈훈해졌다. 지난 한 해 돌아다닌 산들이 조각조각 눈앞에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