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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Aug 22. 2019

1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새>보고 온 후기

2019년 여름의 끝자락, 당신이 보면 좋을 성장에 대한 이야기

 

벌새 키우기 무엇?

 8월 29일 개봉하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해외 영화제 25관왕 달성으로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네요. 그런만큼 작품성에 대한 독자분들의 흥미 역시 크실텐데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새>를 (그것도 무려 감독과 주연배우가 참여한 GV!!) 미리 보고 온 입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썩 괜찮은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사담은 여기까지 본격적인 리뷰 들어가보도록 하죠.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중 2병'이라는 단어가 부당하다고 말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그 정서는 진심이다. 난생처음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에 아이들은 위기감과 상실감을 경험한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연약한 시기를 우리가 단지 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 2병이라는 쉬운 단어로 환원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다. <벌새>는 중학생 2학년 은희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또 위로받으며 나아가는 성장담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한때의 우리처럼 위태롭다.


낯설도록 익숙한 은희의 시선은 그때의 우리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4년 봄. 중학생 2학년 은희는 앳되다. 그리고 은희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낯설도록 익숙하다. 실제로 이날 시사회에 참여한 관객들 중 일부는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은희의 시선과 행동이 너무 익숙해 '내가 그땐 그랬지'라며 하고 봤다고.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경험과 정서가 군데군데 반영된 자전적 영화이기도 하다. 재현된 것은 1994년이라는 시대적 배경만이 아닌 것이다. 변화의 범람에 허우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시절의 우리도 은희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은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담임은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분류하고 모욕을 주는 것도 모자라 조회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에 가겠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호의를 받으며 특목고를 준비 중인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때린다. 부모님에게 하소연해보지만 '싸우지 좀 마라'는 핀잔만 받을 뿐이다.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이 '무차별적 폭행'을 어떻게 동등한 위치에서 이뤄지는 '싸움'으로 볼 수가 있을까.

 은희에게 세상은 '대학 만능주의', '가부장제', '가정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그 세상에서 은희는 소외받고 방치된다. 누구도 은희에게 그러한 종류의 폭력들이 잘못됐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가장 악랄한 종류의 폭력은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반항도, 인지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은희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돼 주는 것은 '관계'다. 은희는 단짝 친구 지숙과 시시콜콜한 일상과 일탈을 나누고 남자친구 지환과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귀여워서 함박웃음 짓게 만드는 꽁냥꽁냥한 연애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자연 상태처럼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은희는 그 공백을 관계로 채우려 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은희는 사랑과 이해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보라 감독은 시사회에서 그런 은희의 모습이 새 중에서 가작지만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 꿀을 찾아 먼 거리를 비행하는 벌새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해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계는 항상 불안정하다. 그리고 불안정한 관계는 은희에게 상처가 된다. 단짝인 지숙은 자신이 혼나는 것이 두려워 은희를 배신하고, 남자친구인 지환은 은희의 연락을 무시한 채 다른 여자 아이와 연애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흉이 잘 진다.

 그 시절의 우리는 우리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변덕스러웠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사랑받고 이해받음으로써 안정 되고자 하는 욕망. 김보라 감독은 미성숙한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은 은희에게 그녀가 다니는 한문 학원의 강사 '영지'를 통해 그 욕망을 해소시켜 준다. 그것은 보다 성숙한 차원의 사랑과 이해다. 한편으로는 김보라 감독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파편이기도 하다.

 김보라 감독은 시사회에서 영지 역에 대해 "중학생 때 한문 학원을 다녔어요. (저를 가르치시던) 운동권 선생님이 계셨는데 우롱차를 종종 끓여주셨어요. 그런데 그게 되게 아름다웠어요..."라고 설명을 하다가 감정에 복받쳤는지 울컥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위해준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내가 가장 못났고, 어리석었을 때 받은 그 위로는 결코 잊지 못한다. 두고두고 간직하게 되는 당시의 마음과 진심은 그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위로가 된다. 은희에게 영지는 그런 사람이다. 보는 사람이 따듯해질 만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영지는 은희에게 그녀를 둘러싼 일상의 폭력이 잘못됐음을 처음으로 얘기해준 어른이기도 하다. 영지는 은희에게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있지 마"라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듣는 은희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물론, 변해야 하는 것은 은희의 가족이고 사회지만 누군가 은희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는 사실이 윤희에게는 참 따듯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관계도 단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어떤 관계의 단절은 내부에서 발생하지만 어떤 관계의 단절은 외부에서 발생한다. 1994년의 10월처럼.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시대적 배경이 왜 1994년인지 의문이 들기는 했다. 의문은 영화가 꽤나 진행된 지점에서야 풀렸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한 날이다. 은희의 오빠와 언니는 이날 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은희는 영지를 잃었다. 공권력의 부정부패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이날의 생존과 죽음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은희에게 중학생 2학년으로 살았던 1994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왜 성장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실을 함께 안고 갈까.

 김보라 감독은 시사회에서 시대적 배경을 1994년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19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진 사건이 제게는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었어요. 그 시대의 공기가 사람들이 단절되는 것들과 물리적으로 다리가 붕괴되는 것과 굉장히 연결돼있다고 느꼈어요"라고 대답했다. 영화가 끝나기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은희와 그녀의 언니가 새벽에 끊어진 성수대교를 보러 가는 씬이 있다. 프레임 속, 끊어진 성수대교 사이에는 은희와 그녀의 언니가 위치해 그 단절을 채운 것처럼 보인다. 어떤 관계는 단절돼도 단절된 것이 아니다.


울고 있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나봅니다...

 

 시사회에서 김보라 감독이 보여준 진실함 때문이었을까. <벌새>가 주는 여운이 유독 깊다. 김보라 감독은 스스로는 결코 정의 내릴 수 없는 우리의 사춘기 시절을 '상처'와 '위로'로 인수분해 해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라는 값을 도출하게 해준다. <벌새>는 은희의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태롭고 연약했던 그 시절의 내게 다가가게 한다. 한편으로는 서사 외적으로도 특이점이 많은 작품이다. 소소한 유머 코드도, 피사체를 담는 정적이고 머무르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도 썩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벌새>가 22일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과 더불어 9월 1주차까지 극장가를 이끌 아트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성장, 관계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나름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특히, 90년대 초반에 사춘기를 보내셨던 분들이라면 더욱 와닿겠네요. 아무쪼록 모든 독자분들 오늘 하루도 영화 같은 하루 보내기를 바라며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면 더 좋은 글과 영화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보면 좋을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특집 리뷰 1) https://brunch.co.kr/@inu-ssw/79 


함께 보면 좋을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특집 리뷰 2) https://brunch.co.kr/@inu-ssw/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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