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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May 31. 2018

<홈> 누구나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제목: 홈

감독: 김종우

출연: 이효제(준호 役), 임태풍(성호 役), 김하나(지영 役), 허준석(원재 役)

#1시간 40분 #소풍 #가족 #성장 #이별


*해당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웃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여린 눈으로 눈치를 보고 작은 어깨로 삶의 무게를 짊어지며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또래보다 일찍 어른이 된다. 이번 리뷰에서 다룰 영화 <홈>의 주인공인 열네 살 '준호'가 성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게 사고가 생겨 이부동생인 '성호'와 단둘이 남게 된 준호는 성호의 친부 '원재'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그와 그의 딸 '지영'과 함께 지내며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발견한다. 가족의 의미는 영화의 제목인 '홈'과도 맞닿는다.

 김종우 감독은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영화에는 식사에 관한 세 가지 씬이 등장한다. 첫 번째 씬에서 준호는 출근 준비 때문에 식사를 하지 못하고 집을 나서는 어머니를 걱정한다. 두 번째 씬에서 준호는 이혼한 아버지를 찾아가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얘기해보지만 거절당한다. 세 번째 씬에서 준호는 원재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차린 아침밥이지만 모두가 화목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따듯함과 행복함을 경험한다.

 준호에게 집밥인지 인스턴트 음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는 함께한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 이렇게 같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준호의 대사는 듣는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준호에게 비로소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집이 생겼다는 것은 그동안 종수가 그런 것들로부터 결여된 채 살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툴지만 종수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원재의 존재 역시 그렇다.


함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질 때가 있다

 

 일찍 어른이 돼버린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선뜻 내보이지 않는 건, 너무 훌쩍 자라버린 나머지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기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재는 그런 준호의 누군가가 돼준다. 아침에 주스를 챙겨 받고, 축구화를 선물 받은 것만으로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기뻐하는 준호의 모습은 준호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관객들이 실감하게 한다. 경찰서에 찾아온 준호를 경찰관이 꼬마라고 부르는 씬에서 알 수 있듯이 준호는 아직 아이다.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다.

 그러나 세상은 준호에게 끊임없이 어른다워질 것을 강요한다. 영화 속에는 준호가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씬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준호가 걸어나가야 할 삶의 경사를 암시한다. 원재는 준호에게 좋은 어른이 돼주려고 노력하지만 준호의 양육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 금전적인 부담감을 느낀다. 준호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원재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쓸모 있는 존재라도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준호의 간절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삼켜지지 않고 얹힌다.

 어머니를 떠나보낼 때도 울지 않고, 동급생들에게 구타를 당할 때도 울지 않던 준호는 원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며 소리친다. "같이 살고 싶어요"라고. 나에게는 그 씬이 바쁜 어머니를 보살피고, 어린 동생을 챙기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견뎌내야 했던 준호가 '나 사실 괜찮지 않아요. 나에게는 아직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세상에 외치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괜찮은 아이도 없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언제든지 기댈 수 있집이 필요하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늑들게 한다


 설정과는 달리 과정과 결말에 있어 <홈>은 현실적인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영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김종우 감독은 극복과 화합으로 마침표를 찍는 일반적인 성장 영화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가장 현실에 부합한 결말을 준호와 관객에게 건네준다. 현실에서 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영화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성장은 시간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GV에서 김종우 감독은 현실적인 결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웃거나 행복한 씬이 됐다면 그렇게 (준호처럼) 자라고 있는 친구들한테 '이 영화 거짓말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역시도 영화라는 매체가 세상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극사실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영화가 준호의 미래를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맹목적 판타지로 그려냈을 때, 현실을 사는 아이들이 느낄 박탈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종우 감독은 결말을 통해 '비록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 함께라면 그것이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준호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끝을 맺는다. 오프닝 씬과 엔딩 씬은 준호가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 씬에서와는 달리, 엔딩 씬에서 준호는 반겨주는 친구들도 생겼고 팀워크를 통해 활약도 하는 등 원하는 삶을 살게 됐지만 그토록 갈구했던 홈에는 온전히 다가가지 못한다. 준호에게 홈은 해소될 수 없는 소외감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홈이 필요하다


 <홈>은 준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가족의 의미가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누군가와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서 소원해지고, 누군가와는 같이 살면서도 소외감을 느낀다. 때로는 삶이 너무 각박해서, 때로는 살아온 삶의 궤적이 너무 달라서 우리는 조금씩 멀어진다. 과거에 비해 가족 간의 유대감이 희미해지는 현실 속에서, 혈연도 아닌 원재에게 함께 살고 싶다고 외치는 준호의 간절함은 살면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함께'라는 의미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함께할 때 행복하고 위안이 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있는 곳이 곧, 홈이기도 하다. 집은 한 명의 사람이라도 감싸 안을 때 그 의미를 다한다. 그래서 돌아갈 홈이 필요하다는 말은 함께할 가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시, 함께해줌으로써 누군가에게 홈이 돼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준호처럼 너무 늦게서야 홈을 찾게 되는 아이도 있고, 어렵게 찾은 홈에서 떠나야 하는 아이도 있다. 준호와 같은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좋은 가족이 돼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우 감독이 드라마틱한 연출을 구성하기 위해 서사의 구조의 정교함을 챙기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야만 준호의 감정과 생각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슬쩍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 줄 수밖에 없다. <홈>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준호 役을 맡은 이효제의 연기였다. 영화 속 준호의 디테일을 완벽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더 준호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준호의 시선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끝으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늘 없이 항상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홈> 리뷰를 마친다.            


이번 리뷰를 JHK, JSB, SHJ, KMS, SJH에게 바칩니다.


리뷰원본: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18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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