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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un 20. 2018

<허스토리> 비극은 아직도 유효하다

일본군 '위안부' 주제를 가장 사려 깊게 다룬 영화

제목: 허스토리

감독: 민동규

출연: 김희애(문정숙 役), 김해수(배정길 役), 예수정(박순녀 役), 문숙(서귀순 役), 이용녀(이옥주 役)

#2시간 1분 #일본군'위안부'#벡델 테스트 #history #아닌 #herstory #함께 #하겠습니다


*해당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으로 시사회에 참석하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허스토리>는 현시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사려 깊은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로 삶을 빼앗긴 10명의 원고인이 1992년에서 1998년까지 6년 동안 일본 정부에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청구하며 소송을 진행한 '관부재판 사건[관(關: 일본 시모노세키), 부(釜: 부산)]'을 다뤘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총 23번의 재판이 있었으며 훗날 일본 고등법원에서 패소하기는 했지만 유일무이하게 일본 법원이 책임을 인정한 사건이기도 하다.

 연출적으로 주목할 점은 피해자분들이 겪어야 했던 잔혹한 과거를 재연으로 들추어내지 않고도 그 비운의 역사를 정확하게 짚어낸다는 것이다. 서사에 필요한 전사(前事)는 오로지 피해자분들의 증언으로만 구술된다. 민규동 감독은 피해자분들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주목한다. 일본군이 새긴 수많은 상처와 모욕적인 낙서들로 평생 목욕탕에 가보지도 못하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만 보면 심장이 벌렁벌렁 떨리고/ 어두운 곳에만 있으면 공포가 엄습하고/ 당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미안한 가족이 돼야 하는 피해자분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허스토리>는 제목 그대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분노를 이끌어내기는 쉽다. 그러나 분노를 객관적으로 풀어내 관객들이 영화관 밖에서도 이 분노를 유지하게 하기란 어렵다. 민규동 감독은 분노를 한번에 점화시키지 않고 그 역할을 수행해낸다. 관객들이 느낄 분노를 남발하지 않는다. 재판 씬과 특정 씬에 한정해서만 피해자분들의 울분을 압축시켜 표현한다. 살 떨리도록 잔혹했던 당시의 과거는 피해자분들의 증언을 통해 발화된다. 당시의 상황을 두려움에 떨며 증언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 샷은 순간적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를 고조시킨다. 


"나를 본모습으로 돌리도. 열일곱 살 때 그때로 돌리도... 근데 나도 안 되는 거 안다. 그러니 사과를 해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정길은 일본 재판관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신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있어서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고 있지만 영화가 증명하듯 피해자분들의 삶이 곧, 증거다.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또한, 그렇게 방치돼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전 생애에 걸쳐 피해자분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박탈당한 삶은 어떠한 것으로도 상쇄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정부의 '자신들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참회 가득한' 사죄, 최소한 그것만큼은 이뤄져야 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피해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허스토리>는 사죄와 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같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피해자분들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그러한 전제가 배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합의금이 이렇게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안이라고 해서 피해자분들이 그에 응하는 배상을 요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 그 돈 부끄러운 거 아니다"


 옥주는 말한다. "보상금 받아서 옷도 사 입고, 머리도 하고, 약도 해 먹어야지". 맞다. 그래야 한다. 피해자분들의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피해자분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잘못을 100% 인정한 진정성 담긴 사과를 했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지는 배상은 그 역시도 사죄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러한 의식을 갖고 피해자분들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절대 눈치 봐야 하는 일이 아님을 당연하게 보여준다.


오로지 피해자분들의 선택이고 결정이어야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허스토리>의 연출이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분들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고 소송 과정을 온전하게 함께하는 '정숙'이라는 캐릭터의 존재에 있다. (정숙은 실제로 당시 관부재판 원고단장이었던 김문숙 선생님을 모티브로 했으며 그녀는 현재도'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며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정숙이 피해자분들을 돕는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쯤 했으면 충분하다며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정숙은 말한다. 


"부끄러버서. 내 혼자 잘 먹고 잘 산 게..."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접하는 정숙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피해자분들에 대한 죄송함과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 정숙은 영화를 보며 관객이 느끼는 정서를 대변한다. 피해자분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며 끓어오르지만 해소될 수 없는 분노에 답답함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재판에서 피해자분들의 증언을 재판관에게 통역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파렴치함에 분노가 앞서 화를 내기도 한다. 영화는 이처럼 관객들이 피해자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었던 말과 일본 정부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을 정숙의 입을 빌려 발화시킨다. 


정숙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과 일체화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 관부재판에 참여하셨던 피해자분들이 모두 서거하셨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돼야 하겠지만 사과를 받아야 할 피해자분들께서 없다면 실질적인 의미는 상당 부분 희석될 수밖에 없다. (2018년 6월 20일 기준) 현재 생존하고 계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28명. 고령의 연세로 인해 건강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너무 많은 피해자분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지금 당장 사죄가 이뤄져도 너무 늦었다고 할 정도로 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의미 있는 작품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오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허스토리>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주제를 가장 사려 깊게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감독들도 피해자분들을 기리고 일본 정부의 파렴치함을 비판하기 위해 각자의 연출 기법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존중한다. 그러나 민규동 감독의 작품은 당시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분들이 살아왔을 삶의 흔적을 헤아리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사과와 배상에 대한 사안의 경우처럼 기존의 영화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 역시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주제와는 별개로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끌고 다 했다. 자랑 좀 하면 안되나?"하는 정숙의 대사처럼 한국 영화에서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수동적인 여성상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주체적 여성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숙의 모티브가 된 김문숙 선생님이 회장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사이트라고 하니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들어가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http://www.womenandwarbusan.com/main/mai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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