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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Feb 03. 2017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리처드 커티스’를 몰라도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와 로맨스 코미디의 만남은 항상 옳다. 리처드 커티스가 연출한 로맨스 코미디 작품들에는 ‘삶’이 담겨 있다. 지금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사람들과 순간들에 대한 소중함과 절실함이 로맨스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그가 극본을 쓴 첫 번째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다른 주목할 점은 이후 그와 다수의 명작을 함께하게 되는 배우 휴 그랜트의 첫 번째 만남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전개는 제목 그대로 이뤄지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영화는 영국을 배경으로 주인공 찰스와 그의 친구들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담으며 전개된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진솔한 감정들이 머물다가는 종착역이다. 결혼식은 만남과 행복을, 장례식은 이별과 슬픔을 의미하며 삶의 시작과 끝을 매듭짓는다.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다른 이름은 ‘삶’이다. 찰스는 삶이라는 영화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배경으로 때로는 조연을 때로는 주연을 연기하며 삶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물론, 핵심은 로맨스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결혼이라는 의식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아온 찰스가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첫 번째 결혼식에 친구의 들러리로 참석한 찰스는 미국에서 온 캐리를 보고 운명적인 사랑을 직감한다. 캐리도 찰스에게 호감을 느껴 함께 하룻밤을 보내지만 캐리는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관객은 찰스의 감정을 곱씹을 틈도 없이 ‘3개월 후’라는 자막과 함께 곧바로 두 번째 결혼식으로 전환되는 화면을 따라간다.

 관객들의 예상대로 찰스와 캐리는 두 번째 결혼식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영화가 캐리를 다른 남자와 약혼시킴으로써 찰스의 사랑은 무안함으로 덧씌워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다시 하룻밤을 보냈고 이번에는 찰스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곧바로 이어지는 세 번째 결혼식은 찰스가 캐리의 청첩장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찰스와 캐리의 사랑을 확신하던 관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캐리의 약혼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이런 전개를 취하는 것은 매끄럽지 못하고 이해하기도 힘든 부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관객만큼이나 찰스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500일의 서머>의 주인공 ‘톰’처럼 졸지에 비운의 주인공이 된 찰스. 그러나 찰스는 톰보다 지고지순하다. 캐리의 결혼식에 찾아가 축하해주기까지 한다. 유감스럽게도 비극은 다시 한번 찾아온다. 캐리의 결혼식에서 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게리스’가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자연스레 스크린은 첫 번째 장례식으로 넘어간다.

삶은 언제나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때로는 희극으로 때로는 비극으로.

 시종일관 유쾌했던 영화에 어두운 분위기가 내려앉는다. 만남과 행복으로 충만했던 어제와 이별과 슬픔으로 가득 찬 오늘이 마치, 잘 쪼개진 사과처럼 두 동강 난다. 죽음과 사랑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노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리스의 장례식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 ‘매튜’가 읽은 조서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는 나의 동서남북이었고, 나의 주일, 나의 휴일이었다.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말, 나의 노래였다.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던 내가 틀렸다"         

 가슴이 아픈 이별을 경험해도 희극인지 비극인지 삶은 계속된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르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네 번째 결혼식이 열린다. 바로, 찰스의 결혼식이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와 다시 만나 결혼식까지 앞두고 있지만 찰스는 혼란스럽다. 진정 그녀를 사랑하는지, 결혼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 찰스 앞에 캐리가 나타난다. 서로 감정을 숨기고 상투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이혼을 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찰스는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인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의 결과는 뻔하다. 서로 좋아하지만 엇갈린 운명을 살아가게 되는 남녀가 기적적으로 재회해 서로를 선택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과도 같은 전개다. 결국, 찰스는 결혼식을 파투 내고 캐리에게 달려가 “나와 결혼 안 하고 평생토록 살아줄 수 있어요?”라며 청혼한다. 아마 영화사(史)를 통틀어 가장 이상한 청혼일 것이다.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이처럼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기본골격으로 유지하며 독특한 전개 방식과 예측 불가능한 내용으로 관객들을 조련한다.

 그러나 영화가 찰스와 캐리의 사랑으로만 수놓아지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리처드 커티스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삶을 불어넣었다. 각각의 결혼식과 장례식에는 수많은 삶들이 서로 교차하며 인연과 감정이 생기를 되찾는다. 그곳에는 실수를 반복하며 생애 첫 주례를 보고 있는 신부가 있고, 오랜 구애 끝에 리디아와 결혼하게 되는 버나드가 있고, 한눈에 반한 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스칼렛이 있다. 감 잠을 수 없는 찰스의 로맨스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은 이름 모를 영국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포근하게 그려진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리처드 커티스가 앞으로 그려낼 로맨스 코미디 영화들에 비하면 개연성이나 깊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은 어중간한 B급 로맨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리처드 커티스와 휴 그랜트를 있게 한 작품이라는 것. 그들의 팬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작품 아닐까. 그래도 리처드 커티스 특유의 따듯함과 포근함은 그대로다. 개연성 없는 로맨스는 조금 어색할지라도 영화가 그려내는 소소한 행복들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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