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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 you marry me?
장난기가 가득 담긴 두 눈이 반짝였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해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잔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를 닮은 갈색빛이 투명한 잔에 담겨 있었다.
- No.
- No?
- No!
단박에 거절이라니, 실망인 걸. Logan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남은 맥주를 시원하게 비워냈다. 실망한 사람치곤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가 꽤나 여유로워 보였다.
- Well, let me know if you change your mind.
혹시 마음이 바뀌면 얘기해. 언제든 도와줄게. 그는 가볍게 한 마디를 얹고는 티브이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일처럼 나와 결혼'해' 주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어쩌면 내 하소연이 너무 길었는지도 모른다. 영주권 신청을 위해 제출한 서류는 캐나다를 떠나 한국을 거쳐 필리핀의 어딘가에서 일 년째 표류 중이었다. 그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외국인의 처지를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한 건 아닌지. 어쨌든 Logan의 잘못도 크다. 그가 술을 권하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징징거리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가 빚은 맥주는 꽤나 높은 알코올 농도를 자랑했다.
- 너 그거 불법인 거 알지? 위장 결혼으로 영주권을 받은 게 들통이라도 나면 내가 추방당하는 건 물론이고 케네디언인 너도 문제가 된다고. 그리고 결혼이란 걸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 나한테 결혼은 쓸모없는 제도야. 그걸 이용해서 너를 도와줄 수 있다면 적어도 하나의 쓸모는 생기는 거 아닌가? I mean only if you wanna do it.
나의 민감한 반응에 그가 냉소를 띄우며 말했다. 단순한 호의로 룸메이트와 위장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하긴 Logan이라면 그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를 따라 남은 맥주를 시원하게 비워냈다. 알다가도 모를 녀석.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을 함께 지낸 룸메이트들이 수두룩했지만 나와 다른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자를 꼽으라면 당연 Logan이 일 순위였다.
우리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설거지가 생기는 족족 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 달리 그는 개수대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 한 번에 치우는 것을 좋아했다. 조용한 주말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가 주최한 하우스 파티가 열렸다. 노래를 곧잘 부르는 그는 내가 노래방을 싫어하는 유일한 한국인일 거라며 입을 샐쭉이기도 했다. 이 녀석과 어떻게 한 집에 살지? 하고 생각한 것이 벌써 이 년 전 일이었다.
- 이거 한 번 읽어봐.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너 주려고 샀어.
숙취로 힘겹게 일어난 주말. 외출했다 돌아온 Logan이 소설책 한 권을 건넸다.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얼굴을 반쯤 가린 소년의 모습이 담긴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물어봐,라고 말하는 그의 손에는 몇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그래, 이게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지. Book lovers.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던 나의 말에 관심을 보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 그리고...... 어제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해.
- 무슨 소리야?
- 내가 결혼하자고 한 것. 생각해보니 네가 기분 나빴을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사과를 받은 내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기던 때가 있었다. 나이도 있는데 어서 시집가야지, 라는 소리를 들으면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던 때가. 이제 그 적당한 나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진 않지만 언젠가 좋은 사람과 부부가 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Logan은 달랐다.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의 부모님 역시 삼십 년 넘게 common law, 그러니까 동거인의 형태로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다양한 곳을 떠돌며 생활하길 좋아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어떤 장소나 제도에 묶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그는 그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 아니야. 나도 미안해. 근데 내가 정말로 결혼하자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
- 그럼 하는 거지 뭐.
- 요즘 데이트하는 친구는 어떡하고? 여자 친구 아니야?
- Claire? She is...... a friend with benefits.
프렌드 위드 베네핏?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고는 Logan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 그런 거 말이야...... 연인은 아니고...... You know what I'm talking about.
아아, 그런 사이. 베네핏을 회사 복지 혜택쯤으로 이해했던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어색하게 책 표지를 쓰다듬었다. 역시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라. Logan은 발개진 내 얼굴은 아랑곳없이 얼마 전 만든 수제 맥주를 꺼내 들었다. 제대로 발효가 되었는지 한 모금을 마셔보고는 이런저런 기록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의 맥주는 다음 주말에 있을 Canada Day 파티에서 큰 인기를 끌 것이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선물 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 네가 영주권 받는 날에 우리 파티하자. 내가 맥주 만들어줄게.
- 그래. 노래방도 가자.
- 정말?
- 응, 정말.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 오늘 저녁엔 설거지를 하니 마니로 투닥거릴지라도 그가 좋아하는 노래방은 같이 즐겨야지.
2013년. Canada Day를 일주일 앞둔 여름날의 저녁.
Logan은 맥주를 빚고 나는 책을 읽으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 Photo by Shabu Anow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