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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틀에 한 번씩 외박을 했다. 학교에서는 가정환경 조사를 명목으로 부모의 직업과 학벌을 물었다. 아빠는 공무원, 엄마는 전업주부. '공무원'이라는 글자 뒤에 괄호를 만들어 '사무직'이라는 꼼꼼한 설명도 추가했다. 근무처는 종합청사. 흘낏 종이를 본 선생이 말했다. 아버님이 종합청사에 계셔? 살기 좋겠다.
살기 좋겠다. 틀린 말이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이 말한 살기 좋겠다가 무슨 의민지는 열두 살인 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살기 좋다, 돈은 없지만. 아빠의 직업은 공무원, 근무처는 종합청사. 마음속으로 괄호를 만들어 '경비원'이라는 설명을 추가한다. 그래서 아빠는 이틀에 한 번씩 외박을 했다.
아빠가 교대 근무를 하는 날이면 엄마는 안방에 두 개의 이부자리를 나란히 폈다. 엄마가 벽을 등지며 눕고 언니가 중간에 자리를 잡으면 나는 티브이를 마주하고 제일 앞에 누웠다. 리모컨이 먹통일 때는 막내인 내가 이리저리 채널 돌리는 역할을 했다. 두 개의 이부자리와 티브이 사이에는 내 짧은 다리 길이 정도의 공간만 남았다. 아빠가 없는 깜깜한 밤. 다닥다닥 엉겨 붙은 가운데 안방이 좁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틀에 한 번씩, 아빠는 종합청사를 지켰고 엄마는 우리 자매를 지켰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언니와 나는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작은 방은 한 개의 이부자리만으로도 꽉 찰 만큼 작았다. 발끝으로는 쌍둥이 같은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모로 누우면 짙은 밤색 장롱이 눈에 들어왔다.
- 아 좀, 그만 들썩거려.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끊임없이 자세를 고쳐 눕는 나의 습관을 언니는 견디지 못했다. 우리는 죽부인처럼 긴 베개를 함께 베고 한 이불을 덮었으니, 언니의 짜증을 탓할 순 없는 환경이었다.
- 야, 너나 코 좀 그만 골아.
투닥거림은 자주 싸움으로 번졌다. 작은 집의 작은 방에서 벌어진 싸움은 얇은 벽을 넘어 조금 덜 작은 방의 엄마 아빠를 거슬리게 했다.
- 아이고, 동네 시끄러워! 요것들! 얼른 잠이나 자!
호령이 떨어지면 우리는 서로 등을 지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자다가 설핏 눈을 떴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코 앞에 얼굴을 맞대고 잠든 언니가 보였다. 그릉그릉. 아이씨, 또 코 고는 거봐.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 밤들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짙은 밤색 장롱이, 들썩거리는 내가, 코를 고는 언니가, 얇은 벽이, 이틀에 한 번씩 함께 잠이 드는 엄마와 아빠가,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 티브이가 어둠 속에 나란히 누워있던 그런 밤들이 나는 싫지 않았다.
열두 살의 가난은 미묘하다. 부모의 직업과 학벌을 묻는 학교의 목적을, 선생이 말한 '살기 좋겠다'의 다양한 의미를 꿰뚫게 만든다. 그래서 아빠의 직업을 말하는 게 부끄럽고, 보기 좋게 포장하는 법도 배운다. 혼자 쓰는 침대방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매일 밤이면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의 품을 파고든다. 무한한 우주 같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내 가족이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싫으면서 좋은 미묘함. 열두 살의 가난은 그랬다.
이제 우리 집이라 불리던 작고 낡은 주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허물어진 터에는 머지않아 그럴듯한 아파트가 지어질 것이다. 퇴직한 아빠는 외박을 하지 않고 늙은 엄마는 자식들의 이부자리를 펴지 않는다. 언니는 여전히 코를 골지만 더 이상 같은 방을 쓰지 않는 나는 들을 수 없다. 익숙해서 끝이 없을 것 같은 시간들도 언젠간 변하기 마련이다. 그 끝을 채우는 건 그리움이란 감정이다. 가난해서 외롭지 않았던 열두 살의 나를 떠올린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 Photo by Shabu Anow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