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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Kwon May 10. 2020

깜깜하지 않은 밤


#_


나리의 깔끔한 성격은 외모에서 단연 돋보였다. 잔디인형처럼 삐죽 솟은 머리카락은 반 뼘을 넘는 법이 없었고, 검은색 뿌리가 보일 새도 없이 늘 샛노랗게 탈색되어있곤 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 통이 넓은 힙합 바지에 폴로셔츠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우리의 자취방은 예술관에서부터 정확히 25분을 걸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일 년에 180만 원. 도주 중이던 신창원이 살았다는 소문 덕에 20만 원을 깎은 터였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절반으로 짧아지면 방값은 배가 되었다. 아무렴 어때. 이마를 긁적이는 나리를 향해 나는 쿨한 척 어깨를 들썩였다. 대학 새내기. 겨우 한 달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나리도, 나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동기들은 이미 기숙사나 자취방에 각자의 둥지를 튼 이후였다. 몇 시쯤 잠자리에 드는지, 진밥과 된밥 중 어떤 걸 좋아하는지, 화장실 쓰레기통은 자주 비우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은 함께 살다 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어쨌건 그게 뭐 중요한가. 


- 안돼!

- 뭐가?


각자의 이불을 펴고 막 전등을 끄려던 참이었다.


- 난 깜깜하면 무서워서 잠이 안 와. 불 켜고 자야 해.


참 나. 어두워야 밤이 오고 불을 꺼야 잠이 드는 것 아닌가. 엉거주춤한 상태로 내려다본 나리는 모로 누운 채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단 그녀가 잠들면 불을 끄기로 마음먹고 나 역시 모로 누웠다. 자취 생활의 첫날밤.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은 나리의 짧은 머리카락들이 백열등 아래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이 무서운 나리의 고충은 옆 건물에 위치한 공용 세탁실을 이용할 때 도드라졌다. 그녀는 매일 저녁 자취방을 쓸고 닦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먼지들을 돌돌이 테이프로 밀어냈다. 그 숭고한 작업이 끝나면 그날 입었던 옷가지들을 빨아 너는 것이 그녀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 같이 가줄 거지?

- 아니,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린데 왜 혼자 못 가는데?

-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린데 왜 같이 못 가주는데?


귀찮으니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작은 베란다 너머로 깜깜한 어둠이 꾸역꾸역 밀려오고 있었다. 나리가 죽도록 싫어하는 어둠이. 


- 신창원이...... 신창원이 세탁실에 숨어 있음 어떡해. 


변명거리가 그럴듯했다. 천연덕스럽지 못했던 나리의 애절한 눈빛도 한몫했다. 그렇게 여름이 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를 함께 걸었다. 1999년 7월. 신창원이 잡혔다. 


한 학기가 지나자 대학 생활은 한창 재밌어졌다. 어딜 가나 함께하는 단짝 친구들도 생겼다. 그중 나리는 없었다. 내 귀가가 늦는 날에도 나리는 한 구석에 빨랫거리를 놓아두고 나를 기다렸다. 술 취한 밤이면 환한 백열등 아래 그녀의 빨래가 유독 눈에 밟혔다. 아이씨, 이제 좀 알아서 하라고. 말 대신 차가운 행동이 먼저 나왔다.


나리는 술을 마실 줄 몰랐다. 선배의 강요로 소주 한 잔을 들이켜기라도 하면 금세 온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짧게 솟은 샛노란 머리카락과 강렬히 대비되는 색이었다. 그래서인지 동기들이 끼리끼리 술집을 드나들 때에도 그녀는 홀로 자취방을 지켰다. 나는 종종 친구들을 데려와 그 고유한 시간을 방해하기도 했다. 


- 근데 걔는 꼭 그렇게 눈치를 줘야 한다니?

- 우리 움직일 때마다 돌돌이 테이프 들고 따라다니는 거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지면 난리 나겠더라.

- 너도 참 피곤하겠다.


친구들이 한 마디씩 얹을 때마다 나도 괜스레 짜증을 더했다. 그러니까. 깔끔도 정도껏 떨어야지. 적반하장에 매정하기 짝이 없는 룸메이트였다. 싱크대에 넘치던 그릇을 정리한 게, 냉장고 속 말라비틀어진 김치를 치운 게, 지저분한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운 게 누군데, 깔끔도 정도껏이래! 나리가 화를 내고 싸웠더라면 꼬리를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리는 술을 마실 줄 몰랐고, 화를 낼 줄은 더더욱 몰랐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주로 학교와 자취방만 오고 가던 나리가 학교를 오고 가지 않기 시작했다. 어서 일 년 계약을 끝내고 단짝과 방을 얻고 싶었던 나도 내심 걱정이 들었다. 가끔은 수업에 흥미를 잃은 그녀가 아직 방을 쓸고 닦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 나 자퇴하려고.


어느 날, 불빛이 음침한 공동 세탁실에서 나리가 말했다. 


- 왜?

- 재수를 하든가 아님 그냥 대학을 가지 말든가. 

-...... 왜?


나 때문이야? 유치한 질문이 목구멍에 걸렸다. 


- 난 선배들이 군기 잡는 단체 생활은 질색이야. 전공도 맞지 않고. 


나하고도 맞지 않고? 차마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물어본댔자 그렇다고 대답할 나리도 아니었다. 차라리 화를 내고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토라졌다가 은근슬쩍 풀어지고, 미주알고주알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역시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백열등 아래 빈틈없이 샛노란 나리의 머리카락이 빛나고 있었다. 문득 나리가 없어도 혼자서 불을 켜고 자는 날이 계속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깜깜하지 않은 밤. 불빛 때문인지,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나는 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 Photo by Shabu Anow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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