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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아내의 드라마틱 사교생활

베프포에버

by 미미

얼마 전 새로사귄 친구 집에 초대받아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2주전부터 벼르고 있던 BFF(베스트 프렌즈 포에버) 모임이었다.


언제 베프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이후 이런 명칭이 너무 오랫만이라 웃음이 났다.

(자 이제 생각해보건데 이상하리만치 유치한 명칭에 집착하는 이 친구를 경계했어야했다. 이 친구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기에…)


오늘 셋이 모였는데 모두 각자 다른 사람 때문에 이 곳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 마치 서로의 속을 털어놓길래 정말 베프가 되었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


이 모임을 주도한 친구는 매주 요일을 박아서 모임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임에 네 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한 명은 자꾸 아이가 아프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자꾸 핑계를 대며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 주 나와 그 친구 둘이 보게되었다. 문제는 내가 그 친구의 실체를 비로소 완벽하게 파악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연애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지금의 남편까지 인생사를 나에게 털어놓았다(나는 물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이제 듣고싶다며 나를 채근했다. 나는 어버버 거리며 어디서 시작해야될까 했는데, 그 친구가 고등학교 연애이야기부터 시작하니 나도 반 강제적으로 그 시기부터 이야기해야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간략한 설명을 붙이긴 했지만 수십년 전 이야기를 굳이 왜 꺼내야되는지 영문을 모른채였다. 그닥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좋지 않았던 경험을 끄집어 내봤자이다. 모두 과거사일뿐.

부모님 이야기, 결혼이야기, 시댁과의 관계까지 굳이 다 질문하고 답을 해야되는 그런 상황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론, 앞단에 한 시간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숨도쉬지 않고 속사포같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바람에 나는 이미 정신이 한 개도 없었다. 물어보지 않은 자신의 연애사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미래의 계획까지 늘어놓는데(내년도 나의 여행 계획은 이거야. 몇월엔 어디가고, 이때는 어딜가고 등등)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자신의 현 남편의 전부인에 대한 욕인데, 그 파트에만 가면 흥분하면서 악담을 퍼붓고 한참을 머무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저번에 한 이야기를 또 되풀이해서 하고 있었다. 조짐은 많이 보였지만, 왜 이 친구가 여기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나서고, 그 일에 그렇게나 적극적이며, 친구들은 왜 그렇게 핑계를 대며 하나씩 꽁무늬를 빼는지 드디어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상담의 종류 중 도치료라는 게 있는데, 사람마다 가장 핵심적인 감정 한 단어로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갈급함’이었다.

자신의 커다란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 ‘갈급함’, 목마른 느낌. 숨 넘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호소하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너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해달라는 그 깊은 외침이 너무 강렬해서, 사람들은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이게 과도한 애정결핍을 지닌 사람에 대한 일반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이제 이 곳에서 어떻게 서서히 벗어날지 궁리를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상담자가 필요한 상태이다. 그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결론은 쉽게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라.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는 증거이다. 나도 이 곳에서 친구를 사귀고픈 마음에, 이상함을 몇 번 감지하고도 애써 눈을 감았다. 작은 동네에서는 조심 또 조심, 사람을 조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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