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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아내와 재택근무(퇴사편)

exit 전략

by 미미

실제로 보면 출구전략은 없다.

그냥 그만두는 것이다.

직장을 n군데 다녀봤지만

어디도 너무 쉽다고 느껴진 곳은 없었다.

죄다 그 업계 특유의 매력과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특정 콘텐츠 업계에 들어가본 결과

와… 이 곳은 정신이 한 개도 없다.

일단 이 분야는 페이스가 짧고

여러 명과 콜라보 하는 단계가 많으며,

도미노 게임처럼 한 명의 기한이 늦으면

맞물려서 늦어지기 때문에

기한에 목숨건다.

그렇다고 변수가 없냐 그것도 아니다.

그제는 밤 열한시 반까지 컴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도대체 뭐하나 싶었다.

이렇게 내 시간을 들이는 일이기에는

내 시간과 내 삶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3개월 일해보고 이후에도 합류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게 딜이었는데,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지금, 그만두겠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내 삶이 영위가 되지 않고, 일에만 매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소명에 더 집중해야되기 때문이다.


취사선택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주재원 아내로 따라 다니면서 주부 외에 나만의 일을 갖지 못해서 항상 안타까웠는데, 막상 해보니 지금 나의 삶의 형태(나의 가족 케어, 집안 케어, 성당에서의 역할)를 고려할 때 전혀 들어맞지가 않았다. 재택근무라고 내 지금 삶의 방식과 잘 어우러질 수도 있겠다는 나의 생각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이제 누구 말마따나 매니저 레벨을 할 짬이지, 처음부터 새로운 업계에서 배우기에는 체력적으로, 두뇌적으로(기억력 ;) 한계를 느낀다.


나에게 가장 맞는 형태의 일을 찾아간다는 것. 내게 원하시는 게 뭔지를 잘 알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맞지 않으면 직관적으로 (gut feeling) 알 수 있으니 그 직관을 믿는 게 현명하다.


출장 중인 남편 덕에, 내가 야근을 해도 백업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졌다. 어제 겨우 애 저녁 해먹이고 치우고 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지나갔다. 이렇게 동동거리며 한국에서 맞벌이 하던 때가(악몽?) 생각난다. 이렇게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가는 이 곳 개도국에서 마치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게다가 일 하느라 만나지 못한 친구들 리스트만 늘어가고 있다. 놀러가자는 한 친구에게 내가 일에 파묻혀 있다고 하자 그 친구 왈:

내가 항상 하는 말인데, 일은 너무 과대평가받고 있어!(Work is way too overrated!)


그렇다. 일에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부여한다. 일과 소명은 다른 것인데, 소명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확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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