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내 친구 피아노
9살 때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주셨다. 그 당시 시골에는 학원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는데 딸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었으면 해서 보내주셨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무엇을 배우는 일에 시기가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은 어릴 때 배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데, 수영도 영어도 성인이 되어서 배우려고 하면 시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배우는 속도도 상당히 느리다.
반면 어릴 때 시작하여 조금만 꾸준히 배우면 습득력도 빠르고 무엇보다 심리적인 장벽이 낮아 자연스럽게 익혀 평생 부담 없이 발전시키고 써먹을 수 있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을 2년 정도 다닌 어느 날, 부모님께서는 중고 피아노를 선물해 주셨다. 그 당시 80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음에도 나를 위해 큰 결심을 해주신 부모님께 새삼 너무 감사하고 뭉클해진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덕분에 내 인생 속에 소중한 취미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스무 살 이후에는 도시에서 기숙사와 원룸 생활을 하다 보니 피아노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부모님 댁에 가서 한 번씩 칠까 말까 했는데, 세월이 흐르니 피아노도 점점 고장이 나 최근 결국 폐기 수순을 밟았다.
25년 동안 우리 집 한 공간에 머물렀던 피아노를 내보내면서 참 많이 섭섭하고 슬펐다. 그렇게 피아노와는 영영 이별을 했고 이제 피아노를 칠 일은 거의 없겠구나 하면서 바쁜 일상에 또 잊고 살았다.
휴직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던 중, 내 소중했던 취미인 피아노가 떠올랐다. 처음엔 학원을 알아봤는데 학원비가 만만찮아 차라리 이참에 구매를 하자 싶어 덜컥 디지털 피아노를 사버렸다.
왜 이제야 알아챈 걸까. 마음만 먹었으면 너를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는데! 눈이 악보를 기억하고 손가락이 건반을 기억하는 게 너무 신기했고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찾은 느낌이 들자 정말 행복했다.
물론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아니지만 내 손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느끼는 감정이 좋고 내 마음속에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피아노를 두기 위해 방 한편을 치우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전에 내 마음속 한편을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생활 반경은 넓지 않더라도, 내 마음의 공간은 얼마든지 풍부하게 확장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왜 이렇게 좁디좁은 곳에 나를 두려는 걸까.
넓은 마음의 공간은 생각의 시야도 넓혀 주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자유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찾아낸 소중한 이 취미를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옆에 오래 두고 친하게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