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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Jun 07. 2018

사랑의 단상 (1)

헬스장 바깥에는 붉은 색 '멈춤' 버튼이 없다.


트레드밀을 달리다 보면 가끔 실수로 붉은 색 '멈춤' 버튼을 눌러버리곤 한다. 긴급 상황에서 트레드밀의 전원을 끄는 기능이다. 맹렬하게 움직이던 발 아래의 고무판이 일시에 멈추면, 몸이 휘청인다. 위치상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했지만 마치 어딘가를 향해 겨누어지기라도 한 듯 팽팽해졌던 근육이 순간적으로 이완되며 뒤틀린다. 그래도 고무판이 멈추었기에 가빴던 숨은 트레드밀 손잡이에 기대어 제 속도를 찾을 기횔 얻는다. 곧 다시 달릴 태세를 갖추어야 하더라도.

가끔은 헬스장 바깥에서도 붉은 색 버튼이 필요하다. 비일상적인 감정적 사건이 빚어내는 거센 파고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면서도 일과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다. 헤어짐을 말하고 아쉬움을 주고받느라 눈물을 한 컵씩 흘리다가도, 일상성의 인력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기면 지체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안다. 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기계적으로 팟캐스트를 편집하고 목소리를 바꾸어 엄마의 전화를 성공적으로 받아내야 한다. 아픈 이모가 마음을 많이 쓰지 않도록 쾌활함을 연기해내고, 나아가선 그 연기에 설득된 내가 왜인지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까지 꼭꼭 씹으며 잠을 청해야 한다. 우는 것 역시 노동이라, 그것의 수행 이후에 아려오는 눈 주변 뼈를 매만지다보면, 이 순간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한다는 합리적 판단이 든다. 침대에 누워 매트리스 옆을 더듬다 보면 거기 어디쯤에 붉은 색 버튼이 있지 않을까. 이걸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는.



사랑의 비일상성이란 실로 놀라운 것이라 그것의 수행자를 일과 바깥으로 자꾸만 밀어낸다. 우리, 사랑의 수행자들은 더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갈망하느라 일과를 쥔 손아귀의 힘을 푼다. 익숙하던 행위가 손틈으로 흘러내리는 동안에 우리의 가슴은 다른 색의 자극으로 채워진다. 그것이 끝나고 난 후에 갈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두드리게 될 것을 모르는 채로, 비일상성에 몸을 담근 수행자들은 제가 빠져 있는 상황의 유한성을 잊으려 연기하고 나아가선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잊는다. 잠시 후 붉은 색 버튼 없이는 비일상성의 수레바퀴가 남긴 궤촉을 수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오독할 것이고 오독될 것이다. 끝난 후에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더 이상 해명할 수 없다는 지점이다. 내가 그렇듯 그 역시 스스로를 위해 나를 오독할 것이다. 우리의 생에 붉은 색 버튼은 없고, 일과는 예정대로 흘러가야만 하며, 그것을 해내기 위해 기억은 기꺼이 조작되고 조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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