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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Sep 25. 2018

가끔은 안 느끼고 싶지

1월에 썼던 패터슨 일기

1월 18일의 일기.



어제도 패터슨을 생각했다. 막상 영화를 볼 땐 큰 감흥이 없었는데. 극장에 앉아 있던 바로 그 시점으로부터 훌쩍 밀려나온 지금에서야 자꾸만 어떤 시퀀스들을 돌이키게 된다. 아주 무거운 침대를 몸으로 밀어 옮기듯이. 생각한다. 침대가 조금씩 움직인다. 아주 서서히. 그러면 그 사이로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을 거의 내맡겨 틈을 만드는 셈이다.


저희는 지금 생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라고
라디오가 말했다. 택시 기사님이 종교방송에 주파수를 맞춰 놓은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들의 세계는 기막히게 다른 모양새여서, 가끔은 길에서 마주치는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우주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의 뻔뻔함에 대해 생각했다. 패터슨은 눈 뜨고 꿈 꾸는 어떤 시간에도 기도하지 않지만 지극히 성스럽다. 어떤 종류의 믿음과 교리에 대해, 그 말쑥한 척 하는 얼굴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패터슨이 간직한 그 성스러움이 탐났다. 인간적이고 무결한.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일상을 밀어 나가는 힘. 자꾸만 생각한다. 무거운 침대를 힘주어 미는 행위를.  





말없는 택시기사가 틀어놓은 극동방송을 듣다가 패터슨의 일상에 소리가 없던 것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버스에선 늘상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패터슨의 버스에선 아니었다. 리듬을 만드는 어떠한 소음에도 자신을 의탁하지 않는, 성직자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생각했다. 그는 심지어 찬송가도 부르지 않는다. (나는 찬송가 대신 케이팝을 부르러 날마다 동전노래방에 간다. 그 때마다 내는 500원을 헌금이라 갈음하자.) 맥주 한 잔 정도가 그의 낙일 것이다. 타인의 말에 제 말을 보태지도 않는다. (존나 부럽다. 나는 날마다 말을 많이 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후회하는데. 패터슨은 후회를 안 해서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나봐)


water falls. water falls.
곧게 뻗은 타인의 손가락을 만지고 싶다.

며칠 동안 읽은 것 중 김이듬이 가장 좋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걸 쓰나. 무슨 마음인가. 이 사람은
어떤 문장들은. 참담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절해진다. 안 슬프고 싶어서 지나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얼굴을 감싸고 싶지. 안 느끼고 싶지. 죽은 거에 대해 그만 생각하고 싶지. 오늘은 말도 안 되는 인과를 연결해 놓고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잘 차릴 것이다.


'나는 간주된다 울리지 않는 전축
이 신음이 노래인 줄 모르고
마치 이 세상을 사랑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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