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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Aug 10. 2021

"내가 왜 좋아?"

네가 왜 좋냐면

내가 왜 좋아?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 보통 그렇다. 네가 좋은 이유는 네 입매와 콧대와 눈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손짓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말하는 방식과 말할 때 달라지는 눈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울상을 지을 때의 미묘한 표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눈썹과 팔다리를 움직이는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찍 잠에서 깼을 때 나를 보는 얼굴이 아름답고 내가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농담을 하고 흐흐 웃는 게 귀엽기 때문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섹시하고 내가 그 광경에 자주 매료되기 때문이다. 작은 좋은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내가 왜 좋아? 라고 묻는다면 이 모든 답을 길게 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그냥, 이라는 짧은 대답으로 갈음하지만 사실 터놓고 말하자면 삼십 분쯤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의 이야기가 내 입안 어느 구석에는 쌓여 있다.


어느 순간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게 된다. 부분을 짚기 어려워진다. 수많은 역이 쏟아진다. 부어서 미워진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를 좋아하고, 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화를 내도 너를 좋아하고, 너를 미워하고 싶은 순간에도 너를 좋아하게 되는 때가 오면 더 이상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그 때가 되면 좋아한다는 이름의 그릇은 차고도 넘쳐 다른 언어를 필요로 한다. 나는 내가 타인에게 사랑해, 라고 처음 말했던 몇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을 삼킬 때의 기분도 정확히 알고 있다. 내 맞은편에 있는 이의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그건 그렇고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해버리려다가 그 말이 가지는 사회적 무게와 관계 역학에서의 파워를 생각하며 한 번 삼키고 두 번 삼키고 그러다 목구멍까지 올라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순간에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해. 하고


무수한 역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이 참인 명제가 되어버리는 그 순간,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명제는 와장창 소리도 못 내고 깨져버린다. 명제의 파편이 꾸덕한 마음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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