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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이 Oct 18. 2022

느슨한 연대가 좋아

[22/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너는 내가 전화 안 하면 먼저 하는 법이 없지?"


지난 추석에 만난 오빠가 보자마자 서운한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진짜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궁금하지가 않다. 오빠뿐만이 아니고, 부모님에게도 그렇고 여동생에게도 그렇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도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고, 하물며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사는 대학교 친구와도 목적 없이 잘 연락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나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친구들이나 <가십 걸>의 세레나, 블레어처럼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교류하는 친구들이 부럽다. 동네에서 만나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다니고, 함께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나 떨고, 연애사를 공유하며 사소한 다툼도 하는 이야깃거리는 만들고 싶다. 그러나 친구들 대부분 결혼 후 육아에 매진하고 있어 시간 맞추기도 힘들뿐더러(대부분 내가 친구네 집으로 가야 한다) 싱글인 나와 마땅한 공감대가 없다. 그 사실이 때론 외로울 때도 있다. 에너지 총량이 적은 사람이지만 외톨이가 좋다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이 얘기를 듣는 어떤 친구가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며, 매일 연락을 해온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릴지도 모르겠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게 나는 어쩐지 어렵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에피소드를 만들고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그렇다 한들, 친한 사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믿는다. 가까워 지기 위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보다는 가족이라는 소속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감이 편하다. 실제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 날카롭던 칼날들은 몇 달에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함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든 가끔 보아야 반갑다.


언젠가 한 번은 한 친구가 '너는 고양이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혼자 있는 걸 즐기고 자기가 내킬 때 다가온다며. 그때는 그냥 그런가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 한 마리가 실내에서 안정적으로 느끼는 개인 영역은 10평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려면 20평, 3마리는 30평 이상이 되어야 함께 살아도 불편함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고양이 사정에 집 평수를 맞출 수 없으니 그럴 땐 수직 공간을 늘려 활용 넓이를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느슨한 연대감은 나의 정서적 영역인 셈이다. 모든 걸 함께하길 좋아하는 강아지보다 개인 영역이 10평은 필요한 고양이처럼 나도 정서적 영역이 넉넉한 게 편안하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데는 어쩌면 나를 이해하고 가끔 연락해도 두 팔 벌려 안아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고양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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