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불안과 두려움도 기꺼이 껴안아야 해
글을 읽다 시선이 멈췄다.
자유는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오히려 자유를 행사하려면 그 불안이나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자유 또한 선택할수록 더 얻게 된다. 자유의 삶의 선택에 익숙해진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선택한다.
신수정 <일의 격> p. 331-332 | 자유, 불안 그리고 삶의 창조자
자유,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할 때 누릴 수 있는 것.
자유는 상황을 통해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최근 나는 얼마나 '자유'를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가장 자유했던 삶을 살았던 2019년, 배낭여행 중이던 시기가 떠올랐다. (자유라는 키워드로 여행을 떠올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만, 이 자유의 범주와 정의는 서로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행 중 시간은 유한하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각자 여행 스타일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한 나라를, 아니 그보다 한 도시를 천천히 깊게 느끼는 걸 선호한다.
1년 동안 배낭여행하며 페루의 나스카(Nazca, 나스카 문명, 나스카 라인의 그 나스카 맞다)에 머물 때도 그랬다. 그토록 길게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워커 웨이(workaway)를 이용했기 때문. 나스카에서도 2주간 숙소를 제공받고 대신 호스텔 운영/룸 청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머물렀다. 워커 웨이 하는 사람들을 워커 웨이어(workawayer)라고 하는데 나 외에도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 Carla가 며칠 뒤 도착했다.
나스카는 건조한 사막기후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외곽으로 가면 모래언덕, 그보다 거친 모래 산들이 많다. 그래서 하루는 호스텔 오너 Roy가 투숙 중이던 게스트들과 함께 샌드 보딩을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하필 그날 나와 Carla 둘 다 일하는 날이어서 둘 중 하나는 숙소를 지켜야 했다. 체크인할 게스트도 있었고, 샌드 보딩을 가지 않고 숙소에 머무는 게스트도 있었다. 우리 둘 다 여행자인 데다가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정말 좋아하는걸! 샌드 보딩을 누가 안 하고 싶겠어...
서로 가고 싶어 눈치를 보던 중,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아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몇 번이 are you sure? 을 묻다가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떠났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다음에 가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샌드 보딩의 재미와 추억은 쌓지 못했고, 샌드 보딩 사진 보니 너무 재밌었겠더라. 물론 모래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고, 다녀온 이들은 다들 재미와 함께 근육통을 덤으로 얻어왔다.
* workaway는 유무형 형태의 노동과 숙소(혹은 숙소+식사)를 교환할 수 있는 여행자와 로컬 모두를 위한 플랫폼. 영어를 사용하면 모든 분야에서 기회는 정말 무궁무진해진다! 단순한 육체노동부터 티칭까지 다양한 분야의 job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콜롬비아에서 바이크를 타고 여행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Pablo가 숙소에 도착했다.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려면 짐을 최소화해야 할 텐데 그 와중에 바이올린을 가지고 다니다니! 정말 낭만적이다. 쉬는 날(off duty) 하루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프랑스에서 온 Mandarine, 그리고 Pablo와 셋이 앉아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Pablo가 바이올린을 꺼내드니까 갑자기 Mandarine이 기다리라 더니 자기 방에 가서 우쿨렐레를 가지고 온다. 아니 진짜, 다들 왜 이렇게 낭만 가득해? 그렇게 갑자기 우리 테이블은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관객은 처음엔 나 하나, 그리고 음악 소리를 듣고 모여든 게스트들로 하나둘씩 주변이 둘러싸였다. 건조하지만 조금은 시원했던 아침의 바람, 따사로운 햇살, 우쿨렐레와 바이올린 협주, 행복한 웃음소리. 뭐가 더 필요해? (여행 당시 나는 매 순간을 흠뻑 느끼려고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때의 사진은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라이브 음악을 곁들인 고급 진 조찬 식사를 마친 뒤, Pablo는 오늘 근처의 유적지를 둘러볼 건데 마침 내가 쉬는 날이니 함께 가자고 했다. 오토바이 타고? 무조건 yes 지! 그렇게 그와 함께 나스카의 거친 사막, 메마른 땅을 달리는 경험을 했다. 중간에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기도 하고 해 질 녘이 되어 어둑해지자 길을 잃을 뻔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모험이라 그저 즐거웠다. (나의 워커 웨이어 동료인 Carla는 이날 일하는 날이라 오토바이 뒤에 앉는 나를 바라보던 부러운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녀도 함께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여행하며 늘 모두가 하는 것을 좇아가기보다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가길 좋아한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냐고 물어보면, 아니다. 그저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잘 살피고 욕심내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 여럿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늘 재밌는 일은 내 예측과 예상을 벗어난 곳에서 생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몸뚱이는 하나이기에 모두를 다 할 수 없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선택의 기로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저 선택할 뿐이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것, 용기 내볼 수 있는 것, 기쁠 수 있는 것, 감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자유할 수 있는 것을.
자유를 꿈꾸고, 선택해 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설령 작은 것이라도, 그럴 때 더 큰 자유를 선택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관성으로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설령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신수정 <일의 격> p. 331-332 | 자유, 불안 그리고 삶의 창조자
나중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시선을 옮기자. 물론 원하는 것은 크고 원대해서 지금은 닿을 것 같지 않지만 그 길로 향하는 길에 있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미루지 않고 선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 그래야 진짜 자유함이 주어졌을 때 이를 충만하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자유할 수 있는 상황이 막상 다가와도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소소한 자유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작은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며 내성이 생길 테니까.
마지막으로 저자가 물었던 질문을 또한 나에게도 던져본다.
우리는 자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가 써준 시나리오대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