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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l 15. 2022

연애세포 심폐소생기

코리안 유교걸의 틴더 사용기

상반기에 만난 열한 명의 남자 중 절반은 틴더로 만났다. 연애를 위해 노력할 마음은 들었는데 소개팅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하필 코로나 시대에 연애가 하고 싶어져서는 남자를 만날 곳이 없었다. 그때 친구 불주먹이 알려준 게 틴더였고, 혹시나 친구나 지인을 만날까 봐 주위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에게 "저 오늘부터 틴더 할 거예요!" 공언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3월부터 5월까지 하면서 6명을 만났다.



그 세계는 가입과 동시에 라이크(좋아요 같은 것)가 99개 이상이 쌓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남자 99%, 여자 1%의 비율로 그냥 여자이기만 해도 라이크가 쌓이는 거였지만 소멸 직전이던 연애 세포를 살리기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소개팅 한 번에 틴더 여섯 번.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남자를 동시다발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가.

5월 이후 나는 다시 소개팅 전장으로 돌아왔지만, 틴더로 먼저 연애세포 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연애를 위한 노오력은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 2개월간 데이팅 앱을 사용하며 느낀 점은 아래와 같다.



장점

방구석에서 수많은 남자를 구경할 수 있다.

자신의 남자 취향을 알게 된다.

자존감 올리는데 유용하다. 비록 그것이 거짓 자존감이라 하더라도 도움이 된다.

맺고 끊음이 쉽다.


단점

무한정 스와이프에 중독될 수 있음.

쉽게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대체로 가볍다.

가벼움으로 인해 현타가 온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일단 의심하게 된다.

나 아니면 말고, 너 아니면 말고.

맺고 끊음이 쉽다.



특히 저 무한 스와이프는 중독성이 심한데 어느 정도냐면 회사 과장님이 재밌어 보인다고 핸드폰을 잠시 빌려 가서는 한참 뒤에 돌려받았는데 화면에 '이 구역에 더 이상 보여줄 남자가 없다'는 식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거나, 시시때때로 '인간임을 증명하라'는 메시지가 뜬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매칭되면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밤이고 낮이고 문자에 답장하느라 바빴다. 삶이 피폐해져 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틴더남들은 내가 이걸 왜 하는지 궁금해했고, 나는 순순히 대답해줬다.

"새로운 사람도 좀 만나고, 남들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하고, 괜찮으면 연애도 하고 싶어서?"

그러자 그건 다 과정이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과정? 무엇을 위한 과정? 아, 이 솔직하고 목적 뚜렷한 남성들이여.

육체적 교감도 중요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나 21세기 유교걸은 마음이 없으면 몸이 동하지 않는 사람!

"우리 그런 교감 말고 정신적 교감을 먼저 나눠볼 순 없을까요?"

그러면 어느 순간 사라지는 남성들이 숱하게 있었다.



거르고 골라서 만난 게 여섯 명이었다. 어느 정도 대화를 거쳐 약속을 잡고 가볍게 만났다.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었다. 초반엔 바바리만 두른 변태나 사기꾼, 신흥종교, 장기밀매업자 등을 상상하며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들이었고, 몇몇과는 친구가 됐다. 이성적으로 호감이 가는 남자와는 몇 번씩 만나기도 했는데, 이 과정이 죽어가던 연애 세포를 살렸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는 신비한 모험을 떠나는 동화의 제1장 같은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짜릿했다. 한 사람의 세계와 역사를 탐구하는 건 흥미로웠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면 즐거웠다.

이게 바로 썸이었지!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한 번 맛보면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 앱의 장점은 이번 남자와 잘 안돼도 금방 다음 남자가 온다는 거다.

소개팅만 계속했으면 주선자를 생각해 예의를 차리느라, 단점 발견하기에 급급하다가 금방 지쳐 나가떨어졌을 텐데 이 얼마나 21세기다운 방식이란 말인가!



하지만 가벼움이 진중함으로 변하기까지는 솔직한 표현으로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설렘을 겨우 느낀 사람한테 표현까지 하라는 건, 냉동인간 깨워서 뜀박질시키는 것과 같은 일 아니냐고! 내 연애세포는 죽다 살아나서 이제 겨우 한 걸음 뗐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결론적으로 나는 썸만 타다가 끝났다. 관계의 불안정, 불확실, 불확신 기타 등등에 넌더리가 났기에 두 달 만에 탈퇴에 이르렀다.

진정 놀라운 사실은 나를 그 세계로 초대했던 불주먹과 내가 초대한 또 다른 친구 꺽다리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거다. 무려 틴더로. 그래, 또 나만 남지. 나만. 이젠 뭐 놀랍지도 않어~ 부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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