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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l 20. 2022

그 남자가 맘에 든 n가지 이유



나는 종종 이상한 포인트에서 남자를 다시 만날지 말지 결정하곤 했다. 여태까지 만난 열 한명의 남자는 따로 놓고 보면 겹치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모았더니 공통적인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n번째 남자를 n번 만나기까지 이끈 n가지 이유를 중요도 순으로 나열해보았다.


대화 ★★★★★

귀여움 ★★★★

다정함 ★★★

적극성 ★★★

비전 ★★


흔히 말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관심사가 비슷해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거나, 유머 코드가 비슷하거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거나. 반대말은 '궁금하지 않은 사람', 반대 상황으로는 '지루하다'가 있을 수 있겠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아서 자꾸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사람이 좋았다. 열정적으로 좋아해 본 게 없거나 인생의 비전 같은 게 없으면 흥미가 안 생겼다. 리더십 있는 남자를 좋아하더라고 내가.

최근 만난 열 번째 남자는 키 181에 공무원, 비흡연자에 술도 안 좋아하고 친구도 많이 없는 참한 남성이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내 머리를 내려쳐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한 다음, 알고 보니 우린 결혼을 약속한 사이요!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식장 입장 같은 전개로 중간단계 뛰어넘고 결혼하기 딱 좋은 조건의 남자였다. 그런데 대화는 빈곤한 남자. 연락도, 만남도 미지근했는데 왜 자꾸 보자고 하는 건지. 나는 결혼이 아니라 연애를 먼저 하고 싶었으므로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간 남자는 어땠을까?



A.

팝콘 터지듯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벚꽃을 보러 가야 하니 차를 빌리겠다는 남자의 말에 극구 사양하며 손사래를 쳤더니 그가 그랬다. "아! 누가 사귀재!? 그냥 벚꽃 좀 같이 봐주라! 나 벚꽃 보고 싶어!" 결국 렌트를 해서 벚꽃을 보러 가자는 곳이 남산이었는데 남산 위에는 벚꽃이 봉오리만 맺혀있었다.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던지 머쓱해하는 그를 놀리기 바빴다. 내가 스무 살이었으면 이 오빠를 만났을 텐데 서른이라. 귀엽고 다정해서 좋았는데 그게 다여서 끝났다.



B.

엎드린 남자의 등위로 몸을 포개 눌렀더니 앓는 소리로 “으아 햄버거…” 하던 순간 그 남자가 귀여워 보였다. 물론 그가 순진하다고는 안 했음. 매사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도 좋았는데 콘돔을 끼면 안 선다고 했다. 왜 다른 면에서는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콘돔 앞에서 작아지는지 의문. 근데 그걸 또 당당하게 피력해서 뒷목 잡게 했다. 왜 피임의 책임과 걱정이 여자만의 몫이어야 할까? 그와는 한순간 관계가 끝났는데 그에게 쏟는 시간이 아까워졌기 때문이었다.



C.

만난  3시간 만에 내가 마음에 든다던 그는 대뜸 자기 팔뚝을 만져보라고 했다. 한사코 거부했는데도  번만 만져보라기에  찔러보았는데 그냥 그랬음.  주물러   그랬나? 그는 뿌듯하게 웃으며 "어필할  이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 어이없게 웃겼지만 플러스는 아니었음. 그보다는 처음 보는 차를 시키고 먼저 맛보라고 밀어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음식은 그럴  있는데, 음료까지는 몸에 베여있는 센스 같아서. 적극성, 개그감, 자기 확신이 MAX였던 그는 자꾸 내가 자기를 재는  같다고 했다. 겨우   만났는데 재고 따질  있나요? 그는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일찍 알아서 다행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과 열한 명 만나본 내가 깨달을 수 있는 두 가지 사실.

첫 번째. 내가 남자 보는 눈이 개똥이다.

두 번째. 괜찮은 남자는 눈 좋은 언니들이 다 선점했다.



아, 연애를 너무 오래 쉬어서 감도 안 잡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요즘 남자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랜만에 남자 사람들과의 데이트라 혀가 얼얼할 만큼 달고, 시고, 짠맛을 찾았으나 그게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자극적인 건 몸에 해롭지 않은가.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됐다.



나는 감을 믿는 편이라 첫인상이나 느낌으로 사람 판단하기를 잘한다. 그리고 그 점을 가장 경계하기도 하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진국이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첫 느낌을 보란 듯이 전복시키는 사람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한두 번 만남으로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을 만나도 뭉근하게 오래 보고 싶다. 요즘은 더 그렇다. 사골 같은 아니면 평양냉면, 그것도 아니면 소금 빵 같은 사람 어디 없나. 첫맛은 밍숭 해도 자꾸 먹으면 감칠맛 나는 사람, 어디 없습니까?

n가지 이유를 대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없습니까?

없다고요? 네. 제가 아직 못 만난 걸로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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