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멀티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이든 사람이든 생활이든 아는 것, 해본 것, 안정적이고 확실한 걸 좋아하고 꽂히면 하나만 판다. 뭐든 한 놈만 패는 것이다.
MBTI의 유형 중 끝자리 J가 계획형이라는 말에 누군가 계획이 아니라 통제형이라고 한 것을 본 적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손에 잡혀야 마음이 편하다. 예상 밖의 일들은 스트레스고, 한 번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한 번에 하나씩. 업무도 일상도 대강의 루틴에 따르는 내가 매주 낯선 사람을 만났다는 건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예측 가능한 일상만 살다가 예측 불가한 연애 시장에 뛰어든 이후로 독서와 글쓰기는 사치가 됐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회사와 습작을 병행한 지 4년 차.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며 모든 창작활동이 그러하듯 시간과 작업량이 비례하지도 않는다. 꾸준히 책상 앞에 앉아야만 완성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연애 사업으로 손을 놓고 말았다. 로맨스를 쓰고 있었는데 턱턱 막히는 바람에 손을 놓은 것이 벌써 6개월 전. 새로운 습작물은 하나도 없고, 써두었던 습작물을 고칠 힘도 나지 않는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애 사업에 시간을 들이면서 뭘 느끼긴 했나 보다.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채로 쓰고 있으니까.
글쓰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진영님은(전 회사 동료이자 친구) 슬픈 에세이를 써달라고 한다. 내 첫 독립출판물인 ‘방백’의 울적하고 담담한 이야기가 좋았다나. 그때는 하루하루가 슬펐던 나머지 눈물을 글로 흘리곤 해서 문장이 끝도 못 맺고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제 그 책은 오래된 액자 같다.
더 이상 그때처럼 감성에 절인 글은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뭔가를 써재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슬픈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망한 연애에 관한 이야기. 더 자세히 말하면 6개월간 드라마는 못 쓰고 연애 사업만 했는데 이루지 못한 이야기. 이게 안 슬프면 뭐가 슬프단 말인가.
결혼식에 갔다가 친구들을 만났을 때, 이제 더 결혼할 친구는 없겠지 하기에 그다음은 혹시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농을 했더니 한 친구가 그랬다.
“아영이? 아영이는 글렀어.”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친구는 재빠르게 정정했다.
“아영이는 글... 글로 써.”
그래서 지금 글로 쓰는 중이다. 헤이즈의 '작사가' 노래 가사처럼 슬픔도 과장해서 적는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건 슬픈 이야기다. 나는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다. 드라마를 쓸 때 영상을 떠올리며 쓰는 버릇은 에세이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행동 하나, 말투 하나까지 생생히 재생되어 적힌다. 내 글 안에서는 아무도 지켜줄 수가 없고, 나도 나를 지키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적히는 감정들이 있고, 쓰고 싶지 않지만 이거라도 써야 뭐라도 남을 것 같은 이 내 마음. 얼마나 슬픈지 알랑가 몰라.
내 드라마 선생님은 일상이 다 소재라고 했었다.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소재거리를 찾다가 연애 사업에 뛰어들어보니 이게 다 소재가 되는 것도 같다. 만날 땐 몰랐고, 지나 보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한 명씩 만날 때마다 나는 내가 자꾸 낯설다. 호기심, 호감, 만남, 썸과 연애의 어디쯤에 있을 때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다른 쪽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어지럽고, 혼돈이고 예측 불가한 사람. 뭉툭해진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삶이 다채로워진다. 이게 내 삶의 한 챕터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나를 방구석에 가만둘 수 없는 때. 지금은 그런 때인 것이다.
방구석 창작 대신 연애를 선택했는데, 연애를 시작하면 뭐가 달라질까? 사랑까지도 할 수 있을까. 사랑의 힘으로 글도 써질까?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이게 다 모이면 뭐가 될지 나도 궁금해졌다. 그건 아마도 울고 웃기는 이야기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