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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l 13. 2022

비자발적 솔로 다이어리

자발적 솔로 기간을 7년 가까이 지낸 나는 혼자가 좋았다. 일은 힘들고, 친구는 많았기에 연애에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고 변명해본다. 전쟁통에도 애는 태어난다고 하면 할 말 없음. 반박 시 님말이 다 맞음!

아무튼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자발적 솔로였다. 두 손으로도 모자랄 만큼 친구들을 결혼으로 떠나보내며 이대로 혼자 남을 순 없다 싶었고 결혼을 몰라도 연애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히, 아주 강력히 들었다. 아래는 그 결과, 상반기 연애 보고서다.



상반기 연애보고서

기간 : 1월~ 7월

총 만난 사람 : 11명

3회 이상 만난 사람 : 5명

사귄 사람 : 0명



7개월 동안 11명의 남자를 만났다. 한 명씩 만날 때마다 구글 시트에 신상정보를 기입하고, 에피소드가 쌓일 때마다 업데이트했는데 그게 벌써 11명이 됐다. 절반은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났고 나머지 절반은 적어도 두 번씩은 만났으며 그 중 사귀었다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연애 실패담이자 고찰이고, 자기 반성문이다.



열한 명의 남자는 소개팅으로도 만나고 틴더(데이팅 )로도 만났다.

남자는 어디 가서 만나는 거냐며 한탄하던 내게 틴더를 알려준 건 내 친구 동천동불주먹이었다. 앱으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거니와 변태만 있는 세상이라 생각한 21세기 유교걸은 성과 사랑에 열정적인 불주먹의 안내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고, 끝은 파국이었으나 과정은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 뭐든 처음만 어려운 법이니까.

소개팅은 지지부진했지만 틴더는 속전속결이었다. FWB(friends with benefits)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다. 사귀진 않지만 할 건 다 하는 그런 관계라고! 21세기 유교걸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NO FWB, 코리안 유교걸'이라는 자기소개문구를 쓰고는 자발적 소개팅도 해봤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 키가 큰 사람, 취미가 비슷한 사람, 취미가 다른 사람 기타 등등. 열한 번의 삶을 마주했고, 어떤 삶에 매혹당하는지 알았고, 잠시나마 그들 삶에 들어가 보았다.



어떤 만남에는 대가가 따랐다. 30대의 연애는 따지고 잴 것이 많았는데 나의 연애는 20대에 멈춰있었으므로 진심을 대가로 상처를 받았다. 만남의 기간과 마음의 무게와 상관없이 그러했다. 심지어 상대의 마음을 거절할 때도 마음이 쓰였다. 나는 주로 마음을 쟀고 상대는 무엇을 쟀을까? 타인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를 일. 그들의 마음에도 내가 다 차지 못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열한 명의 남자를 만나며 어땠냐고 물어오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좀 돌아보게 된 거 같아!"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어떤 점은 포기할 수 있는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점은 무엇인지. 만날수록 뚜렷해지는 건 나도 몰랐던 내 눈높이였던 듯. 그리고 그쯤에서 한 번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 나도 타인에게 매력적인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온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 대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던 거야!?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지도 않고 그럴 깜냥도 못 되는 나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데, 그 단 한 사람을 만나기가 이토록 어렵다니. 연애하려고 이렇게 노력해 본 적도,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본 적도 처음인데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게 충격적!

나 좋다는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눈 딱 감고 시작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왜 난 그게 안 되는 걸까. 이 망할 놈의 연애. 혼자 하는 거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 텐데!

연애를 시작하려면 마음이 쌍방이어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주고받는 호감이 지속되어야만 했다.



7년의 세월을 한 번에 뛰어넘으려다 넘어지기 바쁜 요즘. 나는 연애할 의지는 있는데, 연애를 시작할 의지는 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n번째를 거치는 동안 n번째 남자에게 받은 선물의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사용하지도 연장하지도 않은 채 두었더니 환불받았다. 받지 않은 마음은 그보다 적은 돈이 되었다. 적절한 선물을 골라 보내는 정성이 얼마나 값진가 알기 때문에 오히려 선물이 돈으로 변했을 때 마음이 편했다. 보낸 이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안착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금사빠 기질이 다분했으므로) 기꺼이 상처를 주고, 받을 결심이 서야만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거 같다.



그래도 꾸준히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대견해했고 대단해했으며, 하나의 종교활동같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나의 연애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이 오고, 간절히 구하면 연애가 임할 것이니. 시도는 계속 될 것이다.

모두 두 손 모아 기도해주시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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