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데님 로드 ( My Denim Road ) -
살다 보면 예기치 못 한 일이 벌어지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데님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던 그때도 그랬다. 떠올려 보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옷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유니클로를 퇴사하고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패션잡지사 에디터를 희망했다. 하지만 채용공고를 접하기 어렵고, 스펙도 대단치 않은, 나이 많은 졸업생이라는 핸디캡이 있었다. 우선 패션 관련 업종에 취업 하기로 했다. 차선책이었지만 추후에 이러한 경험이 에디터가 되었을 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몇 군데가 있어 입사지원을 했는데, 그중 한 곳이 데님 프로모션이었다.
'프로모션은 의류 브랜드에서 하청을 받아 옷을 직접 생산해 주는 곳이다.'라는 책에서 배운 단순한 생각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학교에서 생산 프로세스를 배웠지만 그건 연애를 로맨스 소설을 읽고 배웠다고 말하는 정도랄까? 하물며 전공 수업 시간엔 데님은 잠깐 언급만 하는 정도였다. 청바지를 좋아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가 없었다. 그래서 더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투명한 유리로 만든 벽과 문이 있는 쇼룸. 그 안을 'ㄷ' 자로 둘러선 높은 행거에 청바지가 촘촘하게 걸려 있었다. 중심엔 직사각형의 큰 원목 탁자. 그 위에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펼치고 면접이 시작 되었다. 사장님께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솔직히 그에 대한 응답보다도 나를 둘러싼 다채로운 파란색이 놀랍고 예뻐서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이틀 뒤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함께 면접 봤던 아웃도어 중견기업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망설임 없이 데님을 하기로 결정했다.
데님 프로모션에 입사하게 되면서 저가의 청바지가 익숙하던 내게 신세계가 펼쳐졌다. 국내 A급 여성 브랜드 만을 맡아서 하던 곳으로, 프리미엄 진을 생산하고 있었다. 다양한 워싱과 자수, 비즈 장식은 물론 바지 외에 다양한 복종을 데님 소재로 만들었다. 더불어 브랜드에서 샘플로 옷을 제공하는 경우, 해외 컬렉션에 나오는 핫 한 아이템이 오기도 해서 신기하고 즐거웠다. 고가의 샘플이 많았지만 가격과 브랜드 네임을 떠나서, 보는 순간 그저 멋있다고 생각한 청바지도 만났다. 리던과 리바이스의 콜라보로 미국에서 생산된 바지였다. 구형 핸드폰 카메라가 다 담지 못한 컬러! 하지만 그때의 느낌은 여전히 건재하다.
중국의 월하노인이 붉은 실로 묶어 놓으면, 그 상대가 하늘이 정한 운명의 배필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여 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된다는 운명의 빨간 실. 굳이 나와 데님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내가 내딛던 발걸음들이 청바지의 푸른색 실로 연결되어, 알 수 없던 길 위를 인도해 준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