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데님 로드 ( My Denim Road ) -
외부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것은 의복의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기능이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면서 문화와 행동양식이 갖춰지며, 오늘날엔 개인의 개성을 가장 쉽게 표출하는 하나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미운 나이 몇 살.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선 아이가 말을 배우며 자신의 의사표현을 고집스럽게 할 때 이렇듯 나이를 집어넣으며, 엄마 말 안 듣는 나이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주로 강하게 말하려는 이유의 발단은 '옷'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거부하고, 그날 자신의 맘에 드는 취향 저격의 옷을 입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의 시작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데, 의복이 가지는 의미를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미운 몇 살을 거치지 않고 주는 데로 입는 아이였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사촌형제와 함께 맡겨저 조부모님 손에 자랐다. 땅따먹기와 딱지치기 그리고 부루마블과 흙바닥에서 장난치는 것이 주된 놀이였기에, 티셔츠와 면바지를 주로 입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서 종이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소중했다.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 무렵부터 친구들이 입는 옷, TV 속 아이돌이 입은 옷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졌고, 해마다 유행하는 옷을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입고 싶은 옷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튼튼한 옷만이 내 곁을 지켰다. 그중에서도 가성비 높은 질긴 청바지 몇 벌은 너무도 귀중했다. 주로 진청색 데님으로 색이 어두워 때가 잘 타지 않았고, 우연히 뭐가 묻더라도 쓱쓱 문질러서 물로 비벼주면 금세 원상복구가 되니 나름대로 스마트했다.
세월이 흘러서 찢어진 청바지의 유행이 왔다. 그리고 바닥을 질질 끌던 힙합바지와 아이스 블루진의 유행을 차례로 거치면서 단정하고 튼튼한 내 데님이 전부였던 세상이 깨져 버렸다. 특히 구제가 심하게 들어가 바지가 찢기고, 하얀 올이 풀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옷이 찢기거나 구멍 나면, 기우던가 버리던지 해야 하는 게 마땅한 절차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청바지가 보기 좋게 그 고정관념을 걷어 차찬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옷의 기능만을 알고 살던 내게 , 유행이 가져온 데님의 다양한 변화는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과도 같았다. 자유분방하게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것도 거침없이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끌렸고 더 많이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 보다, 내 몸을 감싸는 한
겹의 데님을 내가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