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승현이 어머니. 지완이 엄마예요. 잘 지내셨어요?”
메시지를 봤는데 아무 용건 없는 내용이라 "네 지완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인 ‘1’이 사라졌다.
“요즘 지완이가 승현이랑 놀던 시절을 너무 그리워해서요. 괜찮으시면 주말에 승현이 데리고 놀러오시면 좋고요.“
일 학년때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지완이는 이 학년 올라가기 전에 옆 동네 학교로 전학을 갔다. 특별히 우리 아이와 단짝이었다거나 친했던 건 아니지만 키즈카페에서 지완이 생일 파티를 했을 때 초대 받아 갔었고 다른 친구와 함께 지완이 집에도 딱 한 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때 지완이 엄마는 지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지완이는 좀 이상한 애'라는 편견이 반에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지완이는 아이들과 잘 못 어울렸다. 한 여자아이와는 담임선생님이 중재해야 됐을 정도로 트러블이 있어서 지완이 엄마는 상대 엄마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지완이에게 특별히 다른 아이와 다른 점을 못 느꼈다. 다른 아이에게 기분 나쁜 말이나 행동을 한다던지 사회성이 떨어지는 면을 본 적이 없다. 아, 지금 막 생각났는데 지완이가 교실에서 오줌을 쌌다고 들은 적은 있었다. 그것 때문인가?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지완이를 놀리기 시작했을까?
학교 이전에, 우리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녀서 어렸을 때부터 봐온, 빡빡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낀 지완이가 나는 귀여웠다. 오줌을 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초등학교 들어간지 얼마 안 됐을 때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자기만 빼고 다른 아이들이 지완이를 괴롭힌다고 했을 땐 ‘아이들이 왜 그럴까’ 하고 안타까웠다.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지완이 엄마는 지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완이네 집에 놀러간 것도 녹색어머니 활동을 할 때 갑자기 지완이 엄마가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것이다. 지완이가 학교 생활을 어려워해서 지완이의 전학을 위해 이사간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지완이는 그 학교에서도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지완이 엄마에게 오늘 저녁에라도 영상통화할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지완이 엄마는 내가 된다고 한 그 시각에 딱 맞춰 전화를 걸어왔다. 지완이가 우리 아이에게 말했다.
“너 머리 길었던 것 같은데... 짧네?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우리 아이는 아이스 브레이킹 하려는 지완이의 의도도 모르고 ‘자기가 머리가 길었었나’와 진짜 ‘학교에서 뭘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음... 쓰리디펜? 이랑... 직업놀이.”
"넌 학교 재밌어?"
"음... 학교...? 글쎄?"
"난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 그냥 집에만 처박혀 있고 싶어."
“그런 얘기를 왜 해~”라고 부드럽게 아이를 어르는 지완이 엄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이집 공개 수업 때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내게 말도 안 걸었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던 엄마였다. 딱 봐도 내성적일 것 같은 지완이 엄마는 아이를 위해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연락하고 아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등 성격을 거스르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지완이를 들여다봤다. 지완이에게는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듯 했다. “넌 학교 재밌어?”라니... 어른들이나 할 법할 질문을 초등학교 이 학년 아이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안 가고 집에만 처박혀 있고 싶다는 얘기가 전화를 끊고도 오래 남았다. 거의 일 년 만에 화상으로 만난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지완이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한 걸까. 화면이지만 오랜만에 본 지완이는 부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외모가 아니라하는 말이나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지완이의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