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지 않으면 전략적으로 덤벼야 한다
내가 대학 시절 건축을 전공할 때 늘 노력해도 안 따라가지는 재능에 대해 한탄하는 시간이 많았다. 예술 쪽 학문을 하다 보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이란 게 분명히 있다. 엄청난 노력으로 어느 정도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재능이 결합되지 않는 노력은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특히, 집안의 도움이 긴요하기도 하다. 당시에 건축 설계 디자인을 가장 잘하는 학우는 미술과 공간 감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이였다. 아버지가 설계사무소 소장인 학우도 있었는데 천군만마를 옆에 둔 격이었다. 어렸을 때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 94학번 후배들과 어렸을 때 마당에 있는 닭똥만 보며 혼자서 자란 복학생인 나는 설계 콘셉트를 잡을 때부터 차이가 많이 났다.
선교단체 동아리 활동에 더 시간을 많이 보내던 나는 늘 뒷북을 치기 일쑤였고, 설계 과목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후배들처럼 아트펜과 각종 제도 용구에 돈을 많이 들였고, 비싼 건축 잡지도 사서 들여다보았지만, 설계 교수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할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다.
3학점 설계수업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은 밤을 새우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날도 작업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나처럼 설계 수업에 맨몸(?)으로 들어온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별로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트레이싱지를 꺼내더니 모나미 볼펜으로 5분 만에 콘셉트 그림을 쓱쓱 그려서 교수님 앞에 보이며 설명을 했다. 교수님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그때 얼마나 절망스럽던지... 누구는 모나미 볼펜으로 수업 전에 쓱쓱 그려도 패스가 되고, 누구는 비싼 아트펜으로 3일 밤낮을 고민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이 부당한 세상.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된다. 평소에 늘 스케치를 하고 여기저기 고 건축물 탐방을 자주 하고 방학 때 수련회만 다니는 나와 달리, 유럽에 배낭여행도 다니며 건축에 대한 자기 시간을 계속 들인 자라야 그렇게 5분 만에 모나미 볼펜으로도 스케치가 나온다는 걸. 타고나지 않으면 전략적으로 덤벼야 한다.
오늘 아침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책을 만드는 내가 전략적으로 덤벼야 할 부분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대학 시절 설계 과목 생각이 났다. 제일 중요한 건 편집자로서의 삶에 대한 자존감 유지다. 적은 보수에 눈깔 빠지도록 아픈 안구 통증과 허리 통증을 참고 한밤중에도 집에 못 들어가며 혹은 집에서도 교정지 붙들며 만들어도 천 부도 안 팔린다. 그 와중에 책을 공급하는 사명감을 가진다는 건 정신력 싸움이다. 그리고 그 친구처럼 평소에 책에 대한 부단한 스케치와 탐구, 노력의 과정이 있어야 5분 만에 모나미 볼펜으로 콘셉트를 잡을 수 있다.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면 SNS에 내가 만든 책 홍보라도 매일 열심히 해야 한다. 먹고살기 힘들어 출판은 주업이 아닌 부업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 내가 나를 향해 이런 글을 쓰는 것 외에 소망을 간직하기 어렵다. 지질한 앵앵거림으로 들릴지 몰라도!
201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