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의 경우 근본적인 부정적인 믿음은 "나는 가치가 없다"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존재합니다. 존재하지 않으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창조가 실수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럴 리 없습니다. 존재 안에는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존재해야만 세상이 완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존재가 여러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이미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죠.
여러분이 "나는 가치가 없다"라고 믿기 시작하고, 계속 그렇게 믿으면, 여러분은 창조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를 멈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형태는 변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인 한 존재는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그 존재는 다른 존재의 반영인 여러분의 고유한 의식입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 바샤의 메시지
왜 하필 바샤의 메시지에 끌리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아마 이와 같은 메시지 때문일거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이미 가치가 있습니다'는 말이 내 가슴 속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겠죠.
'존재'하기 때문에 그저 견딜 뿐이지 누군가, 무언가가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확인하고 뒷받침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도, 영혼도, 사후의 세계도 알지 못하기에 그에 대한 말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삶 자체에 집중하자고 합니다. 그냥 살면 그만일 뿐이지 내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후에도 남아 있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어떤 목적이 있어 이 세상에 왔다는 말에 대해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은 우리 존재에 너무도 확실하게 알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몸과 생각, 감각, 기억이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 창조의 일부로서 계속 존재하는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누군가의 말에 의지하기보다는 보이는 것, 존재한다고 알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합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존재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내가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던 날들에 다가왔던 부처님의 말씀, 네 본래 모습은 크고 밝다는 말씀이 나에게 너무도 큰 의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어떤 조건으로 와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내 원래 모습은 크고 밝다, 이 세상에 온 것은 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함이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이 혼자 어두운 들판을 헤매는 나에게 누군가가 횃불을 켜고 나를 기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그렇게 다가온 부처님의 말씀에서 내게 삶의 지침처럼 생각된 것은 '신심명'의 말씀입니다. 신심명의 그 긴 글들이 아니라 아래 네 구절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털끝만치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만큼 어긋나나니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저는 에니어그램 9번 유형입니다. 오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고 타고난 본성도 다툼과 갈등을 싫어하며 조화와 평화를 바라는 중재자형입니다. 9번 유형은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려는 욕망’으로 타인과 관계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의견에 수용적이고 남을 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에게 위에 신심명의 말은 얼마나 반갑고 절대적인 진리처럼 느껴졌을까요? 간택(선택)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지 말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고 그저 중간에 있으면 도를 찾을 수 있다니 이 말이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졌을까요?
다음에 내게 다가온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배운 무상과 무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내 몸도 내가 아니고, 내 생각도, 내 느낌도, 내 기억도, 나라는 자아도 내가 아니다는 말을 오래 들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12연기를 배우고 관련된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무상과 무아, 12연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하고 분명한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사라지고, 느낌과 생각이 사라지고 남는 '알아차림', 지켜보는 그 순수 의식 하나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남는 마지막 존재라고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샤의 메시지를 의심없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내 몸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내 생각도, 내 감각도, 자아라고 믿고 있는 그 무언가도 계속 변하며 사라질테지만 무언가는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이런 사전 믿음체계가 없을 때 '당신은 존재한다'는 말과 '당신은 완전한 존재의 일부이다'라는 말이 그다지 마음을 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샤가 얘기하는 창조의 제1법칙은 '당신은 존재한다 (You exist)'입니다. 이 말은 '당신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방식이로든 이 말을 듣는 이의 존재함은 계속될 것인데 원래 창조의 한 조각,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일부이기에 절대 그 존재함을 멈출 수 없다는 말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창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이들은 절대 존재를 멈출 수 없습니다.
내 존재가 가치 없다는 말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창조라는 완전한 존재의 일부인 내가 어떻게 무가치할 수 있겠습니까? 바샤는 다양한 방식으로 '네 존재가 사라진다거나 무가치하다고 믿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믿는 강한 믿음체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본래 존재를 자각하라는 것이 바샤의 한결같은 메시지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세상은 창조의 일부입니다. 바샤는 말합니다. 당신이 태어난 이 지구 뿐만 아니라 이 방대한 우주의 모두가 같은 창조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러니 같은 법칙의 작용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절대적인 창조의 법칙 (Law)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보이는 우주의 어느 한 구석 안드로메다에 가던, 플라이아데스 성단에 가던, 보이지 않는 어느 다른 차원의 우주에 가던 한결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합니다.
존재와의 연결을 중요시하는 9번 유형으로서 저는 지구인 혼자 이 우주에 외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주, 보이지 않는 우주 전체를 통틀어 다양한 차원이 존재하고 수많은 우주인들도 존재할 거라 믿습니다. 물질 우주를 벗어난 우주인들은 바샤가 얘기하는 창조의 5원칙을 아주 잘 이해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좀더 조화롭고 평화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 것이죠.
'당신은 존재합니다. 형태를 바꿀지라도 존재함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으스스하고 스릴 있나요? 이 삶이 끝나도 결코 끝이 아니라니... 얼마전 암투병을 하고 돌아온 제 직장동료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죽으면 그냥 아무 것도 없어. 그냥 의식이 꺼지는 거야. 죽음 이후를 보고 왔다는 이들은 모두 착각한거야."
이런 믿음체계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죽고나면 그저 사라지는 존재. 내가 그 존재라면 나는 아주 슬플 것 같습니다.
태어났으니까 그냥 사는 거야. 괜히 의미를 붙여보았자 모두 착각일 뿐이야. 이런 말도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믿음은 우리 존재의 기반입니다. 바샤는 얘기합니다.
"창조는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에, 당신은 심지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