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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법칙_나는 무얼 믿고 있나

by 선향 Mar 08. 2025

"자기 의심은 신뢰 부족이 아니라, 당신이 선호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신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진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의심은 신뢰 부족이 아니라, 선호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입니다. 언제나 무언가가 진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다시 말해, 만약 당신이 자기 의심이라는 경험을 한다면, 그건 당신이 진정한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정의에 신뢰를 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신념에 믿음을 두고 있을까? 왜 나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할까?” 그 이유는, 그것이 논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게 만드는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보다는 그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 거죠.


이것은 당신의 동기 부여 메커니즘에 기반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선호하지 않는 것들을 계속해서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 일에 대한 신념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대안이 더 선호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신념 때문에 그것이 더 유리한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자신의 최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믿는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선이라고 믿는 방향으로, 항상 그렇게 행동하죠. 그래서 만약 당신이 스스로에게, "나는 왜 내 이익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할까?"라고 묻는다면, 그 선택에 대해 무의식적인 신념이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신념이 그 선택을 더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이 그 신념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신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념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이 신념이 왜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바샤의 말




브런치 글 이미지 1

바샤는 우리가 자신을 의심할 때 실제로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믿는 어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부족하다'라고 믿고 자신을 의심하는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믿음이 나를 괴롭게 하는데 도대체 나에게 뭐가 유리하다는 걸까요? 


나는 부족하다는 믿음을 선택할 때 나에게 유리한 점들을 생각해봅니다. 우선 이 믿음은 내가 무언가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전적인 상황에서 능력이, 자격이, 자질이 부족한 나는 뒤로 한발 빠져 있어도 되지요. 잘난 이들이 앞에서 줄줄이 대기하며 뛰어 들고 있는데 나같이 부족한 사람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부족한 나는 괜히 앞에 나서지 않음으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날 부족하다고 생각할까봐 두렵지만 한편으론 '너도 내가 부족한걸 알고 있잖아'하는 마음으로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뭐가 문제야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학하던 나는 어느새 그 부족함을 나에 대한 합리화의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직장에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도구처럼 쓰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나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 너희가 하라고 말하지요. 생각해보니 내가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걸 하라고 요청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런 믿음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내심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나는 부족하다는 믿음이 스스로를 바꾸지 않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네요. 나는 부족하니까 그걸 채우기 위해 영어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전문 분야의 학위도 따고, 논문도 열심히 읽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애쓰지는 않았으니까요. 회사를 나서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부족함을 힘겹게 견뎌낸 나 자신에게  그 무엇이 되든 자신을 잊어버리는 보상을 주어야했으니까요. 주로 게임, 드라마, 인터넷 소설, 음주 등 오락거리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혹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들과 영상도 그에 해당될 수도 있겠네요.


하루의 시간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마치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화끈거리고 심장은 쿵쿵 뛰고, 소화는 되지 않고, 여러모로 신체기능이 저하됩니다. 마음은 마치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것처럼 자신을 제 형태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지하 3층을 파고 드는 감정은 사람들 앞에서 표정 관리하기에도 힘이 듭니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의 몸과 마음, 감정을 추스리며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에서 반드시 해야할 일을 마쳐야 하니 그러고 나면 하루의 에너지가 거의 다 소진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하루의 끝이면 당이 떨어지고 몸과 마음이 그토록 지치고 어질어질 했던 것이겠지요. 


바샤는 '자기 의심이라는 경험을 한다면, 그건 당신이 진정한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정의에 신뢰를 두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기의심을 할 때 나라고 믿는 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믿지만 실제의 나는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어, 나는 진짜 부족한데 그게 무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족함을 무기처럼 쓴 부분도 있지만 부족함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부족했으면 네가 이 자리에 있겠나?'하는 말도 들리네요. '나는 부족한 사람' 대신에 '나는 이미 충분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져오면 어찌 될지 생각해봅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데 주저함이 줄어들고 내 의견을 내는데 좀더 당당해지고,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자기신뢰가 있어서 좀더 과감히 행동할 것 같네요.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 것처럼요. 나는 단단한 돌다리라는 것을 아니까요. 


어쩌면 이런 행동으로 나아가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가 주저되기 때문에 '나는 부족해'라는 신념을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나는 부족해'라는 믿음에 따른 익숙하고도 오랜 감정의 고통을 견뎌야하지만 자기를 바꾸고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자신을 새롭게 몰아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이 정도네요. 


이런 점들을 정리해볼수록 이제는 진짜 나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도 커지고 나자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들에 관심이 커집니다. 방편인 그 길은 정말 다양합니다. 여러 종교와 비종교 수련단체에서 얘기하는 수행 방법도 많습니다. 바샤는 무어라고 했을지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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