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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의 물이
한 번은 흘려 넘쳐야 한다

by 선향

찰랑 찰랑 찰랑대네.


한창 유행하던 트로트 유행가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이었으니 거의 20여 년 전이다. 그때 새벽에 잠시 다니던 골목 어귀의 절이 있었다. 그 절에 수행 스님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이 하신 말씀 중에 유난히 마음에 콕 다가와 오래도록 남은 말이 있다.


"항아리에 물이 넘치듯 인생에 한번은 넘치도록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찰랑 찰랑 넘칠 듯 찼다고 해도 한번 제대로 넘치는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인생에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인생에서 그렇게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넘치는 사랑을 준 경험이 있는가?


내 경우 사랑을 받은 것은 확실한데 그게 넘치지는 못한 것 같다. 성장 환경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기엔 우리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내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일 환경이 안 되었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 시집, 장가보내야 하는 네 명의 시동생, 시누이들, 돌봐야할 시어머니, 그리고 끊임없는 농사일과 집안일,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게 되자 개를 키우기도 싫어하셨다. 밥 챙겨주는 일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향한 온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경험이 있었나 살펴보며 내 인생의 지난 책장을 넘겨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를 업어 주시고 예뻐해 주신 담임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 '별은 헤어져서, 꽃은 짐으로서 아름다운 이 밤'이라는 유치한 일기 글귀를 읽으시고 내게 시를 쓰도록 지도해주신 이재호 선생님, 그 분들이 내게 관심을 주면서 내 인생에 씨앗을 심어주신 것은 분명하다.


항아리에 물이 넘치는 깊은 사랑을 받은 경험은 어떤 위험이나 비난 없이 온전하게 안전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맘껏 풀어놓게 만드는 경험이 아닐까 한다. 나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에 온전히 귀 기울여주고, 내 욕구를 알아서 해결해 주고, 나를 귀하게 여겨 주어 상대에게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충만함을 준다. 한 번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타인에게서 인정받지 못했기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자기변명일까?


어린 시절 자신이 원하는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고,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의도가 무시되고 좌절되었다면, 그 사람은 내면 깊숙이 자기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욕구와 의도는 무시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내재화된 두려움과 체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무의식에 이 지구별의 생존 환경은 춥고 황량하고 두려운 곳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항아리 가득 넘치는 사랑을 주었는가 돌아본다. 이 질문 앞에 아이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기에 부족한 결핍된 존재로 살지 않았나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강한 믿음을 가진 상태로 세상의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다.


그렇게 환영 받지 못한 존재로 출발한 우리들이 어떻게 내면의 따스한 물결을 채워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따스히 안아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이다.


한 여자


이 지구의 한 여자에게 일어난 일 따위

그 여자의 발이 땅과 닿아 있고

그 여자의 머리가 하늘과 이어 있는 들

땅이 알고 하늘이 알고 있을까요?

그 여자의 마음에 동굴이 있고

동굴 속에 웅크려 때론

상처 난 제 발을 할짝이는

어린 짐승이 있다는 걸

그 여자의 눈이 비쳐내고 있을까요?


도시의 한 가운데 앉아 있어도

그 여자는 숲 속을 걷고 있는데

그 숲에는 길 없는 관목이 무성해

저녁 어스름 홀로 주저앉아

무릎에 고개 숙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 지구의 한 여자 누구에게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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