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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필 자리는 어디인가요?

by 선향

무덤이 있는 언덕의 적막함이 좋았다. 봄이면 할미꽃이 가장 먼저 피어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언덕의 나무와 낮은 관목을 싹 정리하고 잔디를 깐 후 도래솔 (무덤가에 둘러선 소나무)을 심어둔 곳이었다. 그 곳에 앉아서 무엇을 했던가? 해가 어스름해지는 저녁 무렵, 그곳에 앉아 적막함에 잠기며 풀벌레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러던 와중,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쟤가 뭐에 씌었나 보다. 저녁마다 무덤가로 가네."


3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인 우리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한 시간 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10분만 들어가면 시내중심지가 있는 곳, 도시를 상징하는 마지막 아파트가 보이고 나서 이십여 분 쯤 산등성을 타고 오르는 아스팔트길을 부지런히 걸어 가다가 숨이 차서 이제 쉬어야겠다, 마음먹으면 비로소 나타나는 길쭉한 고구마를 닮은 시골 마을. 이름 끝에 '리'가 붙은 접경 지역의 농촌 마을이다.


시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나는 언제나 시골 아이임을 자각했다. 도심에서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는 곳에 살았지만 모든 집들이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시골 마을에 사는 농사꾼의 딸이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의 스웨덴어과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형편 상 서울로 보내기는 힘드니 그냥 지방 국립대 교대를 다니라고 권해 주셨을 법도 한데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내 선택을 믿고 지원해 주셨다. 뭐에 씌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무덤가를 찾던 그때, 고2, 고3 그 시절이 내 인생에 자기 확신이 가장 강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소도시를 떠나 열아홉 살에 올라온 서울에서 산지 이제 36년째이다. 고향 마을에서 산 세월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세월을 타지에서 살았다. 그 동안 서울과 경기도 동서남북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으니 이제 명실상부 서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십대에는 검푸른 북해가 넘실거리는 북반구 스웨덴의 해변 마을에서 일 년을 살아보고, 사십대에는 남반구 태즈먼 해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호주 시드니에서 일 년을 살아봤으니 그것도 축복이다.


그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일곱 곳의 다른 직장을 다녔다. 이직을 선택할 때마다 내게는 간절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 곳의 경력이 다음 곳을 향한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이직은 항상 결핍과 불만이 커지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더 이상 내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곳으로 생각될 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이루어지곤 했다.


지금 직장에서 막 십년 차에 이른 해에 나는 다시 한 번 이직할 뻔 했다. 당시 지인에게서 이직 제안을 받고, 4개월에 걸쳐 목디스크까지 올 정도로 깊이 고민했다. 결국 내 마음을 정하게 만든 건 타로카드점이었다.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타로 카드를 읽는 분은 옮기면 후회 한다는 말과 함께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내게 주어진 축복 같은 직장이라고 했다.


타로카드의 듣기 좋은 말에 기대기는 했지만 그 당시 내가 이직하지 않았던 것은 10년이나 내가 정성을 기울이고 터전을 닦아 놓은 곳을 자발적으로 먼저 떠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리며 기관의 성장에 기여를 해왔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데 왜 내가 내 부족함만을 바라보며 자발적으로 떠나야 하나, 그러기엔 내가 정성을 기울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과 도시, 한국과 세계, 그 접경에서 살아온 나는 교류를 위한 연결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해왔다. 나의 오랜 이사와 이직이 내가 좀 더 깊게 뿌리내릴 자리, 내 꽃을 피울 수 있는 내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열일곱 살 무렵, 고즈넉한 적막과 햇살이 좋아 동네 사람들의 뒷말에도 불구하고 찾아가던 무덤가를 떠올린다. 그때 적막함 속에서 내가 꿈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보며 나는 여전히 물어본다.


내가 꽃필 자리는 어디인가요?


장미를 보라


장미를 보라!

겹겹이 둘러 꽃이 되는 그것

그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감싸려고 저리 겹겹이

피어 올랐는가.

아니, 막으려고 저리 겹겹이

쌓아 올렸는가.


어쩌면 허공,
허공을 움켜지려
뿜어낸 숨결이
굳은 꽃잎이 되었다.


저토록 빡빡하게

저토록 치밀하게

내뱉은 숨결,

꽃이 된 장미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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