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월급을 포인트로 받아 생활하게 된 직장인의 얘기가 나온다. 회장님의 지시로 어렵게 잡은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의 공연 공지를 회장님의 개인 인스타가 아닌 회사 홈페이지에 먼저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숨겨진 속내를 읽지 못하고, 눈치 없이 관행대로 일하다가 미운 털이 박혀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되었다.
윗사람의 의중을 읽고 그에 맞춰 일하기는 쉽지 않다. 심기보좌에 실패하게 되면 윗사람의 인격과 일의 중요도에 따라 다양한 '직장인의 비애'를 경험하게 된다. 승진이 정체되거나, 인격적 모욕으로 느껴지는 질책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듣거나, 심지어 포인트로 월급을 받는 일마저 벌어진다.
직장 생활을 통해 얻고자 하는 보상과 동기 부여 요인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급여 인상만으로 충분한데 어떤 사람은 반드시 승진을 해서 직급이 올라가야만 만족한다. 어떤 사람은 연구에 참여해서 논문을 쓸 기회만 줘도 만족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따서 연구 책임자가 되어야 만족한다. 누군가에게는 명함에 박히는 직위를 통해서 주어지는 명예와 자존감이 너무도 중요하다.
인스타 셀럽인 회장님처럼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경우 '명예욕'과 '과시' 욕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걸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랫사람인 직장인들은 윗분이 원하는 바를 알아서 먼저 챙겨줘야 할까, 아니면 그냥 적당하게 모르는 척 하면서 지시가 내려와야 행동할까 고민이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동안 나를 움직인 내 안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는 상사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맡은 바 일을 잘 해내고 위에서 시키는 일을 깔끔하게 잘 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자율적인 환경에서 내 일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커졌다. 상급자의 인정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맡아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많이 바뀌고 있다. 두드러지고 잘나고 싶어서 괴롭던 이십대와 삼십대를 거치고, 방향을 잃은 듯 허무함과 초조함에 시달리던 사십대가 지나가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오십대도 중반에 이르렀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나로 인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 내가 되지 못한 나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 싫다.
못난 내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더 이상 나 자신과도 세상과도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두리뭉실한 내 몸과 내 마음과 화해하는 것이 내 주변과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데 기여한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다.
나이 들어서도 자신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어쨌든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꼿꼿함과 강력한 상승 에너지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미움 받을 용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 - p211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이들이 그들의 삶에 충실하듯 나 역시 내 삶에 충실해야겠다. 다만,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후반부 삶을 바란다.
퇴근버스
장마철 퇴근 버스는
사람 냄새 가득하다.
시고도 비릿하다.
아침엔 없었던 무장해제한 냄새
낮 동안 우려낸 하루의 쉰 내
서른 아홉 그녀가
하루의 초조를 견뎌낸 냄새
마흔 아홉 그이가
꾹 참고 하루를 짓이겨낸 냄새
내일을 기약하는 짙은 체향 남기고
버스를 떠난다,
우산 속에 온 몸을 구겨 넣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