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우리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처럼 보이는 것들 속에도 패턴이 존재하며, 여러분은 그 패턴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이는 마치 시계추가 극단적으로 흔들리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여러분의 행성에서는 극단적인 반응과 대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심에 더 가까이 머무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행성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혼란의 정도는 결국 여러분이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과거처럼 반대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즉,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혼란과 붕괴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균형 잡힌 상태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여러분의 행성에서 문제를 보다 균형 잡힌 방식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그 경험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고, 사회를 더욱 균형 잡힌 방향으로 이끄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현재 여러분의 행성에서는 한 극단을 다른 극단으로 맞서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기는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 양 극단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보다 균형 잡힌 사회를 창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높은 길을 가라"는 말이 지구에서 존재합니다. 이는 극단적인 상태로 빠지는 유혹을 피하고,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당신들은 혼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것에는 패턴과 질서가 존재합니다. 혼란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패턴을 발견하며, 그것을 조화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둠의 밤을 지나야 내면의 빛이 드러납니다. 진실의 빛이 다가올 때, 다시금 시야가 열릴 것입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가 존재하며, 당신들이 이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_바샤의 말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이들 정치인이 정권을 잡은 것은 그 만큼 이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노골적이고 최면 차리지 않는 적나라한 내 밥그릇 챙기기는 솔직하고도 속 시원한 해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세계인들이 경악하든 말든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관심도 없고 지금의 정책이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해외 원조 기관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78조원의 대외 원조 예산이 없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인 상당수는 지금까지 세계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왔으니 이제부터는 각 나라가 알아서 각자도생하라고 합니다.
어차피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무상원조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체면치례도 귀찮고 눈에 띄는 큰 이익도 없는 일에 무작정 돈을 쓰지는 않겠다는 것이겠지요. 미국의 대외 원조도 이제는 그들이 파는 상품이자 무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껏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통해 미국이 키웠거나, 무역이나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의존도가 높은 각 국가의 정권들은 앞으로 각자도생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요? 한 극단에 다른 극단으로 맞선 역사적 사례가 캄보디아에 있습니다.
70년대 말 킬링필드의 학살을 저지른 크메르 루주는 집단농장을 통한 농경사회 건설을 꿈꾼 극단적인 공산주의 군사정권입니다. 그들의 이념 실현을 위해 화폐를 폐지하고 중산층과 지식인들을 숙청하고 국민의 삼분의 일인 이백만을 학살하거나 굶어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정권을 잡은데에는 미국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반발과 저항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위해 미국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수십만에 이르는 민간인을 폭격으로 사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아온 세계는 이렇게 극단에 극단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념이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한 정치적 혼란이 극대화된 요즘, 바샤가 말하는 혼돈 속의 패턴과 질서는 무엇이며 극단에 극단으로 대응하지 않고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기 이익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은 도덕적, 정치적 올바름으로 표현된 자기 기만과 무능에 대한 반발입니다. 자기 이익과 자기 기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공생 관계임을 깨닿는 것이 유일한 혼돈의 해법이자 중심자리이겠지요. 더 나아가 '네가 곧 나'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또 다른 나를 고통 속에 남겨두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샤는 '나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본 너"라고 합니다. 더 다아가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본 나자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모두, 모두는 하나라는 말을 중심자리로 삼아 극단에 대응하는 나의 반응을 지켜보고 선택합니다. 중심자리는 누구나 하나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시작해야겠습니다. 언제나 중심이 바로 서야 확장이 시작되고 균형이 찾아오니까요. 하나의 선택이 모여서 모두의 선택이 되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