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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머나먼 타이중으로

by 배홍정화 Mar 06. 2025



12/23월요일-12/25수요일 ; 12/25 수요일은 이란에서 타이중으로 이동하는 날!

비 개인 하늘. ① 루프탑에서 찍은 하늘과 역사 ② 역 안에서 찍은 숙소 루프탑. 맨몸이었음 아찔했겠구먼.


숙소에서 아침을 일찍 먹고 짐을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어제는 하늘이 뚫린 것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니 말이다. 어제가 아쉽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짐을 이고 지고 끌고 이동해야 하는데 비가 계속 내린다면 힘들 테니. 이것 또한 행운이라 생각하며 이란현 자오시를 떠난다. 


얘, 나 간다. 잘 있으렴.


대만은 중앙에 기다란 산맥이 있다. 그래서 자오시에서 타이중으로 가려면, 좌측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은 없고 다시 타이베이로 올라가 타이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대만의 지역적 특성을 알아보지 않고 비행기 티켓 끊은 나란 사람, 숙소 다 예매한 뒤에 알게 된 나란 사람. 그래도 한국에서 알아차린 게 어딘가. 대략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는 알고 왔으니. 


자오시에서 타이중으로 한 번에 쭉 갈 수 있는 기차편은 없어서 혹은 매진되어서,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야만 했다. 응, 예매를 미리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자오시에서 출발, 반차오를 거쳐 타이중으로.


타지에서 여행하다 보면 쫄리는 순간들이 한 번씩 온다. 이 날이 그랬다.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겁도 없이 반차오Banqiao역에 대한 정보도 없이 환승시간을 정말 타이트하게 잡았다.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기차는 도로처럼 밀릴 일이 없으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9:33이 되어도 자오시에 열차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광판에 '지연, 5분'의 문구가 떴다. 아, 어쩌지. 이 5분 동안 얼마나 폭풍 검색을 했는지. 반차오역이 얼마나 클지, 환승거리는 얼마나 될지 내 손가락과 눈알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나무위키에 나온 반차오역은 엄청 컸고, 환승은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가야 한다는 글도 있었다. 미쳤다, 이거 들고뛰지 않으면 진짜 아슬아슬하겠다.


열차에 타서도 어제 남은 이슌쉬엔 빵을 먹으며 걱정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먹긴 했네. 심지어, 211편 기차가 가다 서다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반차오역의 2-3 정거장 전 역이었을까. 건너편 플랫폼에서 121편 열차가 보였다. 지금 내려서 저걸로 갈아탈까? 바로 옆 플랫폼이라,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는데. 근데 저게 내가 타야 할 121편이 맞는 건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향하는 121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차 중인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남의 나라에서 미아가 되고 싶진 않았다. 말 안 통하는 중년의 미아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열차칸을 돌아다니며 승무원을 찾았다. 


        나, 반차오역에서 121편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지금 11분이나 지연되어 있다. 

        내가 반차오역을 잘 모르는데, 혹시 내가 타야 할 플랫폼을 너는 확인이 가능하니. 


승무원과 기관사 둘이 현지어로 서로 이야기하고 나에게 짧은 영어로 설명하지만 내 영어는 짧다 못해 끊어진 상태다. 구글 번역기를 켜고, 마이크를 켜고 재빠르게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도 플랫폼은 모르지만 괜찮아. 모든 열차가 지연되고 있어. 

        네가 타야 할 121편은 우리 뒤에 있어.


열차는 반차오역 바로 전역인 타이베이역에 도착했다. 기차 노선상 여기서 갈아타도 괜찮았다. 하지만 어느 플랫폼에 나의 121편이 올지 몰랐다. 그리고, 타이베이역이야말로 플랫폼이 많았다. 쫄리고 급한 나는 모든 짐을 들고 나와 문 앞에서 대기했다. 기관사는 나를 보고 웃었다. 


        걱정 말라니까. 그리고 이 사람과 같이 가. 이 사람도 너와 같은 열차를 탈 거야.


나처럼 환승에 대한 걱정이 있던 현지인이 기관사에게 나와 같은 문의를 한 것 같았다. 그녀도 모든 짐을 들고 문 앞에서 나와 함께 대기했다. 211편 열차문이 열리면 바로 튀어나갈 수 있게. 반차오역에 도착했다. 나는 '씨에씨에, 땡큐'를 외치고 짐을 들고 내렸다. 나와 함께 내린 그녀와 나는 바로 전광판을 보았다. 우리가 타야 할 121편은 어느 플랫폼에서 타야 하나. 다행히 바로 옆 플랫폼이었고, 121편 또한 객실 승무원과 기관사가 말해준 것처럼 지연되었다. 121편 도착, 나는 현지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 그제야 맘 놓고 121편에 탑승했다.


이동편 지연된 게 기분 좋았던 적은 처음이네.



12/25수요일-12/28토요일, 타이중 ; 12/25 수요일

타이중도 날이 좋구나, 얼쑤!


타이중역을 나와 숙소로 향한다. 횡단보도 2개만 건너면 숙소. 끼얏후. 내가 예약한 룸은 2인실인데 현관문(?)과 욕실만 같이 쓰는 구조이고, 침실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룸의 형태였다. 사진만 보고선 이해할 수 없었는데 도착하니 되게 효율성이 좋은 방이라고 생각했다. '나 생일 기념으로 대만 여행 왔어. 그러니 나 창가가 있는 룸으로 배정해 줄 수 있니'를 사전에 전달해 놔서 그런지 햇살을 볼 수 있는 방을 받았다. 


신기하게, 대만에는 창문이 없는 숙소가 많다. 숙소를 예매할 때 without window와 with window의 룸이 있었고 가격이 달랐다. 숙소에 창문이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대만 대부분의 숙소는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도미토리, 개인룸, 호텔까지 모두 이런 형식으로 룸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만에서 총 5개의 숙소에서 머무르고 보니, 창문이 없는 곳은 더욱이 눅눅했고 습했으며 답답했다. 창문이 있는 숙소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참 이 문화가 신기하고,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 그리고 여기에서 많은 빨래를 했다. 건조기가 있어 보송한 옷을 득템한 기분이었다.


여기서 알게 된 살림 지식. 건조기에 넣을 땐 빨래망에서 빼고 넣자. 빨래망에 넣은 옷들은 상대적으로 건조가 된다. 이런 건조기 형태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양말조차도 빨래망에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의 차이가 컸기에...


숙소를 살피고, 잠시 쉬다, 밥을 먹으러 길을 나선다. 숙소에서 NT$300의 식권을 주었다. 1박에 NT$100씩 주는 것으로 지정된 주변 식당, 카페, 기념품숍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였다. 숙소를 저렴하게 판매하면 더 좋겠지만, 이걸 쓰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이득일 것이고, 이걸 사용한다면 지역 경제에 활성화가 되니 좋은 것이겠지.


꽤 많은 곳에서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다. 둘째 날부터 야물딱지게 잘 사용했다.


타이중 기차역은 구기차역과 신기차역이 붙어있다. 지금은 신기치역에서 승하차를 하는데, 구기차역을 모두 철거하진 않았다. 그리고 구기차역을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차선로에 길고 두꺼운 나무를 깔아 의자처럼 활용한다거나, 기차들 내부를 카페, 팝업스토어로 활용한다거나.


적잖히 충격받은 선로의 이용법. 진짜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열차를 활용할 줄 아는 그들.


오늘은 여기저기 모두 돌아다니지 않기로 했다. 타이중에 머무르는 동안 날이 모두 좋을 것이란 예보를 확인했고, 이란에서 여기로 오는 동안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좀 쉬어야겠으므로. 그리고 저녁에 빨래를 할 거니까!


-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만.

①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도긴개긴  ② 순간 눈을 의심했던, 합성 아닙니다.
③ 쏘-스윗, 쏘-큩, 러블리.


슬렁슬렁 걸으면서 야시장 쪽으로 가본다. 배는 고프지만 많이 고프진 않으니 식당에 들어가 본격적(?) 식사는 크게 당기지 않았다. 


각각의 가게에서 꼬치 두 개와 음료 한 잔을 구매했다.


여기는 복잡해 보이지 않으니 꼬치구이를 도전해 보자. 하나에 NT$10이라는 건가 하는 마음에 골랐다. 닭껍질과 애호박꼬치를 골랐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NT$50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뭐지...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한다. 한 번 더 튀겨주는 건가 싶었지만 바로 봉투에 담아주었다. 가격에서도 음식을 제공받을 때도 내 예상과 달랐지만 맛은 훌륭했으니 넘어간다. 넘어가지 않음 어쩔 거야, 말도 안 통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음료 가게 앞에서 메뉴판을 찍어 번역기를 돌려본다. 종류가 굉장히 많다. 패션후르츠+XXX의 시원한 주스를 선택했다. 여기도 배달기사님들이 음료를 가져갔다. 오, 야시장에서 하는 가게도 배달음식이 되는구나 싶다가, 이 가게는 포장마차가 아니라 아예 붙박이(?) 가게니까 가능하겠군 싶었다. 앞에 꽤 많은 음료가 있어 기다리며 하나둘씩 살펴봤다. 번호를 콜링해주는데 나는 못 알아들으니까 픽업대 근처에 딱 서 있었다. 주문을 받은, 그러니까 포스 포지션의 직원이 픽업 포지션의 직원에게 나를 가리키며 뭐라뭐라 했다. 추측건대, '저 친구 외국인이야, 번호 이거야, 그러니까 잘 챙겨줘'의 느낌.


생과일을 바로바로 짜는 음료도 있었다. 배치브루...통은 아니겠지만 그런 모양새의 많은 보온보냉통에 차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거기서 레버를 내려 음료를 담기도 했다. 생과일주스 파트의 제조 포지션에 있는 직원은 생과일을 짜서 즙을 내고, 셰이커에 얼음과 넣어 쉐킷쉐킷한 뒤에 얼음이 담긴 컵에 음료를 따르고선, 음료를 적당량 남겨 맛을 보았다. 흡사 드립 커피를 내어주기 전에 맛보는 것과 같아 보였다. 이렇게 바쁜데도 하나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모두 맛보았다. 프로페셔널해 보이는군... 믿-먹해도 되겠군. 


거진 10분 가까이 있으니 내 음료가 나왔다. 음료 한 잔 짜리가 픽업대에 올라갈 때마다 나는 계속 쳐다봤다. 픽업 포지션의 친구가 내 음료가 되었을 때 나를 불러줬다. 고마워, 정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길에서 꼬치를 하나씩 빼먹고 음료를 쪽쪽 마셨다. 시럽으로만 접하던 패션후르츠의 맛과는 달랐다. 이게 진짜 맛이겠지. 그리고 닭껍질과 애호박은 역시 실패할 수가 없다.


동네의 청계천 정도 되지 않을까.




남은 타이중 여행도 행복할 것만 같은 느낌.

그냥 나 기분이 좋은가봉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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