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석원 Jul 16. 2023

바꾸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

성숙한 개인이 조직을 대하는 태도 (이직과 퇴사)

우리는 종종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그 말에는 회사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주는 곳이니 성과를 내라는 의미와,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회사를 다니냐 적당히 까라면 까야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가족도 내 마음 같지 않은데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인 조직은 어떠할까.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인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투덜거리며 조직의 프로불편러가 된 삶도 행복해 보이지 않고, 반대로 내 생각과 가치는 뒤로 한 채 조직 논리에 매몰되어 충성충성하는 삶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회사를 찾고 있거나 회사에 불만 가득한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봐도 좋다. 성숙한 개인이 어떻게 조직을 선택하고, 조직에서 일하고, 조직을 떠나는지 그 과정을 담아보고자 한다. 


나에 대한 이해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각자마다 특성이 있다. 잘하는 것과 부족한 점이 다르고, 선호하는 것과 선호하지 않는 것도 다르다. 매우 꼼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테일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에서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있고, 자율성이 높은 환경에서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 조직을 선택하기 이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과정, 즉 자기객관화 능력(참고: 메타 인지의 중요성)은 필수적이다. 자기객관화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자신, 남들이 보는 자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본인이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하는지 알고 있는 것 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조직에 대한 이해

두 번째는 조직에 대한 이해이다. 조직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이다. 조직마다 성격이 다르고 장점과 약점이 다르다. 어떤 조직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충성도 높은 구성원의 행동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어떤 조직은 치열한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아나가기도 한다. 현실보다는 당위를 내세우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조직도 있다. 조직을 선택하기에 앞서 그 조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것처럼 조직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성격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닐 때가 많고, 못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잘하는 걸 살리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

세 번째는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이다. 조직 구성원은 결국 조직이 잘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각자의 생각은 잠시 뒤로 하고, 조직의 성격과 조직이 처한 환경에 비춰봤을 때 조직의 구성원으로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무자라도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원하는지 아니면 맡은 일을 군소리 없이 수행하기를 바라는지, 엔지니어라면 기술 부채를 쌓으면서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하는지 아니면 시스템 안정화가 더 중요한 시점인지 등이 될 테고, 리더라면 팀을 강하게 통솔하기 원하는지 아니면 위임과 책임이 가능한 팀으로 만들지 등 예시를 들자면 끝도 없다.




위 세 가지 이해를 바탕으로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셋 중 하나이다. 조직에 남거나, 조직을 바꾸거나, 조직을 떠나라.




조직에 남는다는 결정

조직에 남기로 결정했다면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게 옳다. 나한테 딱 맞는 조직은 세상에 없다. 어느 조직이든 불만은 있기 마련이고 답답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고, 회사는 학원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만큼 수행하고 보상을 받는 것이 근로계약의 의미이다. 때로는 조직이 선택한 길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발목 잡지 말자는 뜻이다.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선택을 내리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참고: 치열한 토론보다 중요한 것


그렇다고 워라밸을 외치며 일 따위 생계유지의 수단이고 자아실현은 퇴근 후에 하자는 자조 섞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혹은 조직이라는 거대한 대의 앞에 복종하는 충실한 노예가 되라는 의미도 물론 아니다. 우리에게는 남은 선택지가 두 개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을 직접 바꾸려는 노력도, 조직을 떠날 용기도 없다면 내가 속한 조직을 믿고 따라보자. 


조직을 바꾼다는 결정

조직을 바꾼다는 결심은 나머지 두 선택지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 될 거라 확신한다. 조직에서 느끼는 답답함의 본질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내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욕구를 실현시키는 힘이 영향력이다. 조직을 바꾼다는 선택은 내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내가 가진 영향력으로 어디까지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 에너지를 쓸 정도로 조직에 큰 애정이 있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 선택으로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 짜릿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 선택을 내린 사람은 조직에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참고: 냉소주의에 빠지고 싶지 않은 중간 관리자에게


조직을 떠난다는 결정

기존 조직을 떠나 다른 조직을 찾는다는 선택지이다. 조직을 떠난다는 선택을 실패, 회피 등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역설적으로 조직을 떠난다는 선택지가 있어야 조직에 남겠다는 선택이 가치를 갖는다. 퇴로 없는 선택에는 자유도, 능동도 없다. 또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 항상 부정적일 필요도 없다.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내가 원하는 성장 방향과 다르거나, 내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역할이라면 더 좋은 환경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기대치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커리어 방향성이 달라지는 등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흔히 하는 실수들

물론 세상 일이 이 글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현실은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각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흔히 하는 실수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직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하는 경우

노력은 좋은 에너지원이지만 방향이 다를 경우 역효과가 난다. 쓸데없는데 힘쓰는 구성원만큼 답답한 일은 없다. 물론 개인에게 기대하는 바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이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어느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나서지도 않을 거면서 뒤에서 불만만 얘기하는 경우

조직의 선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내가 남기로 결정한 조직이다.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그걸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도 구성원의 책임이다. 만약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결정이라면 더 나은 대안을 관철시키거나 안된다면 다른 회사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뒤에서 불만만 얘기하거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행위는 누구 쪽에도 좋지 않다.


노력 없이 퇴사를 결정하는 경우

종종 어디라도 여기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퇴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조직에서 버티면서 고생하는 것보다 다른 조직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일 때가 많다. 그러나 모든 조직은 나름의 문제가 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조직에 답답한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견 내 볼 필요가 있다. 조직을 떠나는 선택은 어떤 게 수용되고 어떤 게 수용되지 않는지 살펴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바꿀 수 없는 영역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경우

조직의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고, 조직에는 개인이 절대 바꿀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 그런데 간혹 바꿀 수 없는 영역을 바꾸기 위해 힘 빼는 경우가 있다. 조직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행동을 취하기 이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인지, 대가를 치려서라도 하고 싶은 영역인지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 내 눈에 거슬리는 걸 모두 소리치는 게 의견 개진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영역은 수용하거나 다른 조직으로 떠나야 한다. 


본인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조직에서 버티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

회사도 성장을 원하고 개인도 성장을 원하지만 그 방향이 다를 수 있다. 그 경우 적극적으로 기대치를 조정해 내 역할을 바꾸거나, 지금 조직에서 불가능하다면 다른 조직을 찾아보는 게 나을 수 있다. 관성에 이끌려 시키는 일만 하다가 나중에 후회를 해도 책임져 주는 사람은 없다. 본인의 선택이니 본인이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누가 뭐래도 내 선택이다.

내가 속할 조직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고 짜증 나는 것투성이다. 지금 조직에 남아 있자니 불만이 쌓이고 다른 조직을 찾자니 거기는 또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럼에도 결국 내 선택이다. 지금 조직에 남아 있는 것도, 뭐라도 바꿔보려고 애쓰는 것도, 다른 조직을 찾는 것도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조직에 남거나, 바꾸거나, 떠나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내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조직에 대한 선택을 남에게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 성인이 된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조직 내 이질적인 존재를 대하는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