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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Feb 14. 2024

20대의 스타트업, 그 마지막 이야기 (5/5)

20대를 떠나는 내가 20대에게 남기는 마지막 이야기

여전히 스타트업이라 하면 20대, 청춘, 열정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스타트업을 20대의 전유물인양 이야기하고 "20대에 한 번쯤은", "실패해도 괜찮아"와 같은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는 멘토들이 지금도 간혹 보인다. 물론 이전보다는 덜하다. 아마 페이스북을 제외하면 성공한 20대 스타트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20대 스타트업은 대부분 망하기 때문이다. 왜 20대 스타트업은 성공하지 못할까. 20대에게 없는, 그렇지만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4가지와 판도라 상자 마지막에 남은 희망까지 시리즈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 마지막 판도라 상자에 대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서론 : 7년이라는 시간

2016년 말부터 발행된 20대 청춘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 시리즈는 나의 첫 브런치 글이자 22살의 나이에 도전과 실패를 통해 알게 된 것들에 대한 글이다. 2015년부터 2년 간 초기 스타트업을 경험하며 성공보다는 실패를, 가능성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20대에 스타트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깨달은 시기기도 하다. 스타트업 대표에서 학생 신분으로 돌아오며, 그 간의 시간을 회고하기 위해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글은 처음부터 5부작으로 구성되었다. 20대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없는 절망 편 4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자 했다. 그러나 20대에는 절대 스타트업을 하지 않겠다던 결심과는 달리, 1년 뒤 나는 메이사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터널 속에서는 뒤를 돌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화는 새로 시작한 회사의 여정이 끝나면(아마도 망할 테니), 그때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재밌게도 2017년 창업한 메이사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 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생존 했고, 성장했고, 더 커질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나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20대와 스타트업에 대한 내 생각을 회고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에 그 이 글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나는 20대 전부를 스타트업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비관주의자들은 대체로 정답을 맞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낙관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비판이 현실을 바꾸는 것보다 쉽다는 의미이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망한다. 때문에 어떤 회사에 대해 왜 이 회사가 망할 수밖에 없는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주장할 수 있고, 이런 주장은 대부분 옳다. 내가 네 차례에 걸쳐 이 메거진에 작성한 글들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20대 스타트업은 돈이 없어서 망하고, 팀원이 없어서 망하고, 기술력이 없어서 망하고, 산업에 대한 통찰력이 없어서 망한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 안될 이유가 백만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그 평행 우주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스타트업의 여정이다. 20대 스타트업은 여전히 대부분 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깨달은 20대 스타트업만이 가지는 가능성이 있다.



경험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경험 없음으로 힘들어했던 창업자로서 참 입에 담기 어려운 문장이다. 그럼에도 사실이다. 경험은 단순히 지식의 획득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험은 특정 집단에 소속돼 있으면서 형성되며 그 집단의 정서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서 전달된다. 때로는 이 경험으로 인해 창업자가 특정 분야나 지식에 매여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반대로 표현하면 모를수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본인이 잘 아는 분야는 항상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과하게 투자를 하고, 반대로 모르는 분야는 부족한 줄도 모르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는 인지 편향은 대표의 흔한 실수이다. (참고: 준거집단이 주는 영향력)


2017년 회사를 창업한 시기에 나는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 아주 강했다. 창업자라는 호칭이 낯설었고, 나와는 다른 배경으로 창업에 뛰어든 대표들보다 개발자 친구들을 만날 때 훨씬 편한 마음이 들었다. 2-3년이 지나서야 개발자 출신 대표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1-2년이 더 지나서야 그냥 대표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고작 4-5년의 대학 생활이 남긴 개발자의 향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는 틀렸다. 경험을 쌓는 것 역시 반작용이 존재한다. 더 중요한 건 어느 집단에서 어떤 경험을 쌓아 나갈지의 방향성이다. 경험이 없다는 건 깨끗한 도화지를 처음부터 그려나간다는 뜻이다. 깨끗한 도화지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열정과 노련미는 반비례한다.

창업을 하기 가장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20대 초반의 나는 시니어 창업을 동경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에 뛰어든 나에 비해, 업계에서 10년씩 경력을 쌓고 창업에 뛰어든 시니어 창업팀의 성공 확률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또 창업의 꿈을 안고 실력을 갈고닦으며 기회를 기다리는 인재들도 많다. 나처럼 무모하지 않고, 치밀하게 꿈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 선택들이 내가 내렸던 선택보다 더 나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그들 중 실제로 창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손에 꼽는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쉽게도 창업은 안 되는 이유가 될 이유보다 훨씬 많은 비대칭 게임이다. 창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더 많이 깨닫게 되는, 노련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들은 항상 좋은 기회만 있다면 가진 걸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회는 오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는 기회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고, 쌓인 커리어는 기회비용을 높인다. 때문에 기회는 항상 충분하지 않다.


창업은 참 재밌는 게임이다. 가진 게 없기에 도전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는 주니어와 가진 게 많아 시작을 못하는 시니어, 어쩌면 창업이야 말로 완벽한 벨런스가 유지된 게임 일 수 있다. 역설적으로 창업하기 좋은 나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에 따라 무기가 달라질 뿐이다.



스타트업 인재는 스타트업에서 길러진다.

지금도 종종 창업을 하고 싶은데 어떤 경험을 쌓는 게 좋을까요? 같은 질문을 받는다. 창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나는 창업을 통해 창업을 배웠다. 홈텍스와 씨름하고 정부 지원 과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기도 있었고, 시드 투자를 받기 위해 처음으로 IR덱을 만들고, 새로운 팀원이 합류하면서 처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모든 걸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웠다. 그렇게 7년을 보낸 결과 나는 어떤 직무보다 대표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런 자잘한 실무 능력이 대표의 역량이란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난 7년 동안 내가 맡은 일은 끊임없이 바뀌었으며,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스타트업에는 언러닝(unlearning)이라는 특이한 개념이 존재한다. 학습(learning)의 반대말로 '과거에는 효과적이었나 현재의 성공에 제약을 가하는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포기하고 벗어나, 새로운 마음가짐과 행동을 구성하는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일반적인 업계에서 경력은 곧 경험을 의미하고, 그 경험이 의미 있는 이유는 외부 환경이 일관적이란 가정(과거에 이랬으니 현재도 이럴 것이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환경은 일관적으로 비일관적이다. 즉 창업의 본질은 극도로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연속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대표의 핵심 역량도 여기에 있다. 불확실성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소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야 말로 내가 20대에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참고 :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



그렇게 나는 20대 전부를 스타트업에서 보냈다.

그렇게 나는 20대 전부를 스타트업에서 보냈다. 오늘은 내 30번째 생일이다. 20대의 나는 거칠었지만 날카로웠고, 앞으로의 나는 더 부드럽지만 노련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나쁘지 않은 20대였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말들이지만 20대에 한 번쯤은, 실패해도 괜찮으니, 창업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마치며

20대 청년 창업가로서 갖는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거품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살펴보자. 정말 스타트업은 20대의 전유물일까.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20대는 20대 때부터 스타트업 업계에서 구르는 것이 옳은가. 스타트업을 꿈꾸는 20대가 바라는 것이 정말 스타트업에 있을까.


20대, 청춘,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1/5) - 너에게 돈이 있는가

20대, 청춘,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2/5) - 너를 믿고 따라와 줄 팀원이 있는가

20대, 청춘,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3/5) - 남을 압도하는 기술력이 있는가

20대, 청춘,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4/5) -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는가

20대의 스타트업, 그 마지막 이야기 (5/5) - 20대를 떠나는 내가 20대에게 남기는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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