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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9. 2023

산타클로스 이즈 커밍?

잠비아에도 산타가 오셔?

해 바뀌면 4학년이 되는 나옹은 아직 산타를 믿는다. 공동육아 4년간은 모두 한 마음으로 산타를 지켰기에(!) 여지가 없었고,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깨지려니 했는데… 코로나는 예상치 못한 데까지 영향을 미쳐, 산타가 있네 없네 옥신각신할 교실 생활 없이 2년이 흘렀다. 덕분에 혹은 그 탓에, 아이는 아직도 산타의 겨울철 격무를 걱정한다. 물론 걱정의 방점은 산타의 과로보단 자기한테까지 못 오시면 어쩌나 하는 데 있다.


그 때는 덕분이고 지금은 탓이니, 작금의 사태(..)엔 부모인 우리 탓도 크다. 그 간 아이가 산타 드시라고 차려둔 간식을 절반만 먹고 흔적을 연출하거나 산타 이동 트랙을 보여주거나 못 알아볼 영문 필기체로 카드를 남기며 산타 방문 신(scene)에 몰입해 온 것은 우리다.


어느 날은 아이가 묻기에 예수님의 탄생과 산타의 역할도 얼레벌레 설명해 주었더니, 주변 보수 기독교 어린이들의 공격마저 수월히 넘기는 것이었다. OO는 예수님이랑 산타 사이를 충분히 이해를 못 하나봐 엄마. 그래서 이제 산타가 안 오신대. 안 믿으니까 안 오지!


내가 잠비아에 가는 걸 아시나 모르시나 잠비아까지 산타가 오실까 안 오실까 메일을 미리 보내달라 걱정하는 어린이를 보며 갈등이 됐다. 적절한 출구 전략이 없는데…이 기회에 산타를 졸업(?)하면 좋겠다. 잠비아엔 이걸 잘 설명해 줄 두 살 많은 솔이 언니도 있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모두 여행 중이라 집에도 없을 테고…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잠비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6학년이 되는 솔까지도 아직 산타를 믿는단다.


….그렇게 곧, 루사카에서 만난, 무려, 곧 6학년, 4학년이 되는 세 녀석은… 진지하게 산타할아버지가 과연 여행지로 찾아오실 수 있는가 집에다 선물을 두고 가실 것인가 서로 근거를 갖춘 합리적 견해를 교환한다. 엄마 아빠가 선물 놓는 거라는 애들도 있어. 야, 한국만 그런 거 아니야 잠비아도 그래. 라며 각박한 세태에 대한 한탄도 양념처럼 곁들인다. 어디 모자란 애들이 아니다.


세 소녀는 결국 산타가 여행지까지 아실 린 없고 집에 왔다 가시리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룬다. 그리고 각자 산타에게 편지를 쓴다. 한글로 쓰래도 나옹은 굳이 파파고까지 돌려가며 영어로 편지를 남긴다. 같은 산타인데 왜 집에선 한글이고 여기선 영어니 딸아. 이미 세계관에 여기저기 균열이 심해 보이는데 나만 느끼는 거니 딸아.


결국 나는 또 J와의 공조로 세 녀석의 선물을 대충 포장했고, 친구 집의 가사를 도와주시는 분께 맡기기로 했다. 카드는 내가 썼다. 이렇게 들키고 싶기는 처음이다. 선물의 한글 택도 그대로 남기고, 필기체 공들이지 않고 내 글씨대로 썼다. 누가 봐도 애들 편지 보고 내가 쓴 것처럼 썼다. 여행 떠나기 직전 거실에 선물을 미리 놔뒀다가, 나가다 말고 뭘 두고 나온 애들이 다시 들어와 어라 하고 발견하는 장면도 상상했지만.. 이모님은 내 마수가 뻗치기 전 선물을 꽁꽁 숨기셨다.


열흘 간의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다.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선물을 발견하곤 뛸듯이 기뻐했다. 나는 평소와 달리 아무 설레발도 치지 않았다. 들키고 싶은 걸까 아닌 걸까. 그저 아이들이 포장을 풀고 카드를 읽는 걸 지켜볼 뿐이다. 이윽고, 언니인 솔이 고개를 들었다.


- 이럴 줄 알았어.


아이의 차분한 말에 흠칫 흔들리는 동공에 힘을 줬다.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들키고 싶은가 아닌가. 심장이 크게 뛴다.


- 산타는 정말 있는 거였어.


세 녀석은 다시금, 함께 몹시, 차분히, 흥분했다. 그럴 줄 알았다. 대박. 오셨어. 증명됐어. 크리스마스 내내 엄마 아빠들은 우리랑 같이 있었잖아. 나 편지에 쓴 선물 주셨어. 증명됐어.


…다시 말하지만, 어디 모자란 애들이 아니다. 모자란 건 나라, 이 대목에선 결국 못 참고 맞장구 설레발을 치고 말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렇게 죄를 쌓는 일…


올 해도 이렇게 산타는 연명에 성공 - 이걸 실패라 해야 하나 성공이라 해야 하나 - 하셨다.


자, 그럼 출구 전략은 올 해 연말에 다시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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