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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2. 2023

아름다움을 길어내는 이들

루사카(Lusaka) : 잠비아의 예술가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을 넘긴 오후다. 위로부터 떨어지는 해질녘의 노란 빛이, 아래로부터 부옇게 일어나는 흙먼지를 달랜다. 후경의 꽤 높은 건물들로 미루어 루사카인 것 같은데, 차와 사람이 한데 엉킨 걸 보면 도심은 아닌가보다.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졌다. 집으로 향하는 사람, 팬에 구운 먹거리나 망고나 채소 따위를 파는 사람, 물건을 산다 간판만 들고 나온 사람, 아이를 업고 나온 여자와 아이를 배에 품고 나온 여자, 사소한 거리의 게임을 시작하려는 남자들, 시비가 붙은 사람, 벌써부터 거나히 취해 누운 사람, 춤추듯 봉고 버스에 매달려 탕탕 출발을 알리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얘기하는 사람들..


- 가만, 아이 좀 가만 있어 봐.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그림의 왼편 어디쯤, 일어나라며 팔을 낚아채는 일행에게 곧 끌려갈 듯 하면서도 나를 마주보는 이가 있다. 빵빵 와글와글 시끌시끌한 저 북새통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그림 밖의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이다. 이제 가자는 일행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 같은 그 이가 내게 말을 건다.


- 이봐요, 이게 바로 우리야.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예요. 또 봅시다. 잘 가요!


그려지지 않은 그 이의 눈과 입이 크게 미소짓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날의 찰나를 잘라 화폭에 옮겼을 뿐인데 마음을 북돋는 이 그림을 다시금 찬찬히 본다. 하나 하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자세, 몸짓, 시선에서 배어나는 흥과 피로, 기쁨과 슬픔, 설렘과 낙담. 건물마저 리듬감있게 들썩들썩해 보이는 오후의 열기. 갤러리의 가장 큰 면에 걸려 기운을 뿜어내는 이 그림은, 잠비아 작가 물렝가 차필라(Mulenga Chafilwa)의 작품이다.


- 이 그림, 꼭 초베 같다.


문득, J에게 말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엄연하고 동등한 삶의 풍경이, 건물 아래 군상들이, 어쩐지 초베의 사바나 속 동물들을 떠오르게 했다. 사는 장면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담담히 드러낸 모습도 그랬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허투루 그리지 않고 입힌 다채로운 옷들에서, 웃음이 나오는 동네 간판 'One Size fits all' 을 깨알같이 포착한 데서, 이 모두를 어르는 눈부신 오후의 햇살에서 느껴지는, 이 세계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그랬다.


37D 갤러리(37D Gallery)는 잠비아의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의 갤러리라고 한다. 가장 강렬했던 차필라의 작품 외에도 매력적인 컬렉션이 즐비했다. 빨려들듯 눈을 계속 바라보게 되는, 인물화일까 추상화일까 싶게 깊은 표정을 한 다양한 인물의 초상들은 소장하고 싶었다. 잠비아에도 이런 세계와 작가들이 있구나,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생각했다.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작가들은 아니지만, 이름도 빛도 없는 장인(artisan)들 또한 여행객을 매료시킨다. 시아봉가에서 루사카로 올라오는 길, 어느 큰 바오밥 나무 아래 바구니를 주르륵 전시해 둔 노점에서 바구니들을 구입했었다. 그의 친구는 그늘에 앉아 말린 야자수잎, 덩굴 식물, 잔가지들을 촘촘히 엮어 크고 작은 바구니들을 만들었다. 루사카의 주말 시장에는 좀 더 많은 좌판이 벌어지지만, 바틱 염색한 패브릭, 나무 그릇, 바구니 등등 가진 물건의 종류는 거의 똑같아 보물 찾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 팔아 어찌 살아가나 싶은 가격을 부른다는 점도 같다.

거리의 아티산들, 그리고 찾아낸 보물들

하여, 잠비아에도 공정무역 단체들이 있다.  트라이벌 텍스타일(Tribal Textile)이나 루사카 컬렉티브(Lusaka Collective) 처럼, 지역의 생산자 공동체를 발굴해서 제품의 기획과 판매를 돕는 이들이다.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공예품을 판매하는 공방 겸 카페의 상품들은 시장에 비하면 가격이 몇 배 비싸지만, 디자인과 품질이 뛰어나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다. 돈이 있는 나라들과 연결할 수 있는 재능있는 사람들 덕에 좌판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이 생산자들께 돌아간다는 것. 안정적인 납품이 가능해진다는 것. 좀 더 존중 받고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감각이 부족한 나로선 엄두가 안 나지만, 언제 보아도 부럽고 근사한 비즈니스다.

루사카 컬렉티브(Lusaka Collective)

J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루사카에서의 일정을 최소화하고 남부의 여행을 늘리려던 계획을 만류한 것은 J였다. 그녀는 루사카에도 보여 주고 싶은 곳들이 제법 있다고 했었다. 덕분에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주말의 수공예품(handicraft)마켓, 공정무역 카페 등을 다녀볼 수 있었다. 발 붙이고 살아가는 곳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사람들은 늘 더 나은 세상의 문을 열어준다. 빼꼼, 다시금 그 문 너머를 엿볼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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