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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홀릭 Sep 19. 2023

임신 후기(~34주 3)

1. 34주 4일



역시나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이제는 밤에 못자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ㅠㅠ 낮밤이 바뀌고 있다.



사람의 생체 시계 구조상 밤에 잘 자고 낮에 잘 활동하는게 정말 중요한데 그러지를 못하니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있다.



토요일인 오늘도 낮에 겨우 자다가 짝꿍이랑 저녁이 되어서야 밥을 먹으러 밖에 나갔다.



나는 밤잠을 못자서 그렇다 치지만, 남편도 잠만보처럼 내가 볼 때마다 자고 있다.

삶이 고되서 그런 것 같다. 현대인의 삶이란ㅠㅠ



고기가 먹고싶어서 남편이랑 고기를 먹었다.

(나는 고기 킬러다. 베지테리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맛있는 것을 참다니!)



먹으면서 요즘은 고기 값도 참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생활 전반에 걸쳐 물가가 장난아니게 치솟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웃도는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부를 축적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요즘 주식 시장도 다 파랗고ㅠㅠ 로또밖에 답이 없는 것인가!!!



로또 1등이 되면 우리 남편에게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사주기로 했는데, 과연 그 날은 언제 오는가! 

오긴 오는 것인가?!



고기는 매우 맛있었다.

애기를 낳으면 이렇게 불로 굽는 고깃집을 한동안 못가게 된다는데 ㅠㅠ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고기를 먹고 다이소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비가 세게 내리기 시작되었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비가 너무 많이, 밀도 높게 내려서 시야가 하얗게 변했을 정도였다.



우산이 무용지물이었다.


남편과 둘다 물에 빠진 생쥐꼴으로 걸어왔는데 뭔가 재미있었다.

혼자서 비를 쫄딱 맞고 돌아왔다면 기분이 불쾌했을 수 있겠으나, 남편과 함께 빗속을 헤치며 돌아오는데 어릴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비를 맞으며 익룡 소리를 냈다.


남편은 내가 돌+I 같다고 했지만 나를 따라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도 마구 웃음이 나왔다.


즐거운 가을 밤이었다.








2. 34주 5일


임신 후기가 되면서부터 골반과 그 주변이 미친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환도 선다’라는 표현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계속 고통스러워 하다가 남편이랑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얼마 안걸었는데도 약간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하니까 ㅋㅋㅠㅠ 고통을 참고 걸어갔다. (의지의 한국인!!)



우리는 오일 파스타와 라자냐를 시켰다.

나는 라자냐를 매우 매우 좋아하는데 남편은 라자냐를 매우 매우 싫어한다.



남편이 캐나다에서 홈스테이를 할때 호스트가 매우 악덕이어서 맨날 저녁으로 작은 크기의 냉동 라자냐를 주었다고 한다. 항상 배가 고프고 슬펐으며 라자냐만 봐도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라자냐를 너무 좋아한다. 없어서 못먹는다!.

예전에는 남편과 함께 먹어야하니까 자제했지만 이제는 그냥 먹고 싶으면 시킨다.(취향 존중 부부임ㅋㅋ)



우리가 간 곳은 동네에 있는 작은 라자냐 맛집이었는데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가 아이가 생기면 작은 식당을 가기가 힘들다고 했기 때문에 일부러 이 식당을 찾아서 갔다.



아기가 생기면 소음이 발생해도 상대적으로 묻히고(?) 아기용 의자가 있는 큰 체인만 가게 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내 삶이 전반적으로 크게 바뀔 것 같아서 약간 걱정이 된다.








3. 34주 6일



요새 자꾸 블로그 포스팅에 먹는 것만 올리는 것 같은데 그만큼 삶이 단조롭기 때문인 것 같다.



몸이 무거워져서 요가 수업가고, 책 읽고, 다큐멘터리보고, 일기 쓰고, 집안일하고, 아기 용품 정리하고 뭐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방간다.

(근데 막상 적어보니까 아예 빈둥대며 놀지는 않는 구먼....?)



항상 느끼지만 빈둥대면서 놀 수 있는 것도 성격이자 팔자라고 생각한다.



천성이 일개미인 나는, 빈둥대면 몸이 너무 쑤시고 무쓸모 인간인 것 같아서 자꾸 뭔가를 찾아서 일을 하게된다.



갑자기 '무쓸모 인간' 하니까 예전에 내가 읽었던 쓸모인류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의 주인공이 참 낭만적이었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 과연 나는 낭만을 찾을 수 있을까? 

낭만따위 다 잊은 채 생존에만 집중한 삶을 잘지는 않을까?



무쓸모 인간이 되기 싫은 나는 오늘도 요가를 다녀오고 남편 줄 도시락도 한번 싸보고, 저녁 산책도 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자꾸 샘솟는다.



가사를 절대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가사는 정말 대단한 업무의 연장이다.



그냥 ㅠㅠ 내 마음이... 임신 전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하고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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