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홀릭 Sep 19. 2023

임신 후기(~34주 1)

임신은 누군가의 삶의 궤도를 바꾸기도 한다.


1. 34주 0일



이 날도 여전히 소화가 안되고 힘들었다.

대체 언제 즈음 속이 편할 수 있을까?



소화가 안돼서 잠이 오지 않고 잠을 자도 자세가 불편해서 쪽잠을 자게 되어 늘 피곤하다.

얼른 아이를 낳고 아무런 방해 없이, 내가 편한 자세로 푹 자보는 게 소원이다.



요즘은 집에서 맨날 다큐를 본다.

원래도 다큐나 비문학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출산 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거의 1일 2 다큐는 기본으로 보는 것 같다.


다큐를 보면 볼수록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삶의 양상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도 세상의 그 어떤 기준과 잣대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체로 행복함을 찾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 34주 1일



이 날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오랜 친구가 나를 보러 왔다.



이 친구는 문래동 근처에 살아서 워낙 맛집을 많이 다니기에, 친구가 오면 어디를 가야 할지 며칠 전부터 고민을 했다.



오래 고민했지만 ㅋㅋㅋ 결국 즉흥적으로 집 근처 딤섬집에 갔다.

역시 인간은 본능적인 동물인 것인가!!!



나의 오랜 친구는 예중 예고를 나와 피아노로 독일에서 석사까지 하고 온 친구인데,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느라 잠시 피아노를 쉬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늘 피아노를 치던 친구의 모습을 봤기에 친구가 이렇게 오랫동안 피아노를 안치는 게 너무 낯설었다.



친구도 이런 본인의 상황이 너무 낯설고 한 번씩은 서럽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전부였던 것이 피아노에서 아이로 바뀌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임신을 할 당시 친구는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며 피아노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평생 피아노만 쳤던 친구는 아이가 태어나며 인생의 궤도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여도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랑 대화를 하며 육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다.


친구는 힘들고 슬픈 날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보였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은 결코 누구에 대한 연민이나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냥 뭉클하고 감동적인 눈물이었던 것 같다.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갈피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아를 탐구하는 친구에 대한 응원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과 두려움도 동시에 생겼다.

과연 내가 기존의 ‘나’를 지키며 새로운 ‘나’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하루였다.




















이전 08화 임신 후기(~33주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