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려다 퇴사하게 된 이유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어? 이게 아닌데?"


일이 꼬인 건 2주 전쯤 퇴근길에 메신저로 공지 문자를 받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 미만 근무한 포카텔로 씨 포함한 OO명 월급이 일괄 인상됩니다'


'응? 좋은데?'라는 생각이 스치기 무섭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연봉 협상일은 7월인데 벌써 올린다고? 우선 연봉이 오르긴 하는데 너무 적네. 그리고 나는 일한 지 2년째인데?..."


버스에서 혼잣말을 내뱉으며 고민하다가 다음날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싱숭생숭한 상황이다. 신입기자는 최저시급 미만을 받을 정도로 열악하고 연봉 인상은 퍼센트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낮다. 최근 5달 사이에 회사 창립멤버인 국장을 비롯해 부국장, 차장, 선임기자 등 9명이 회사를 떠났다.


다음날 회사에 연봉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연봉을 올려준 건 감사하지만 연봉협상에 대해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던 점(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점), 공지에 1년 미만이라고 쓰여있는데 나는 일한 지 2년이 다돼가니 기존 연봉협상일에 하고 싶다는 점(그동안 기존 연봉을 받겠다고 말함)을 전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부분을 얘기했다.


Cap 2019-03-27 18-31-46-533.jpg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만큼 슬픈 퇴근 송은 없다


역시나 답은 'No'. "포카텔로씨가 얼마나 일한 지는 잘 모르겠고 공지사항에 예외는 없다. 연봉계약서에 서명해라"는 말을 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국장에게 물어봤지만 "참아라", "회사에서 올려준다면 고맙다고 받을 것이지 말이 많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얘기를 꺼낸 시점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그냥 말을 하면 안 됐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맴돌기도 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래서 나가겠다는 거야? 퇴사해"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사이에 어설프게 꼈다는 것을 느끼고 아차 싶었다.


'아 X 됐다'


이직을 하던 퇴사를 하던 이 회사는 떠날 생각이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내 행동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음을 위해 성급하게 행동한 부분이 있는지 돌이켜 봤다. 대표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파스칼_-_칼퇴근.png 칼퇴근을 하고 싶었는데 칼같이 잘렸다




하나는 경영진과 사원들 사이에 있는 중간관리자가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어떤 얘기도 전달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조용히 일하는 직원을 호구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간관리자가 못하다 보니 그 누구도 회사에 남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남아있으면 저렇게 밖에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직원들 사이에 팽배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오해가 쌓이면서 등 돌리는 일이 잦았다.


두 번째 부분도 충격이었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100% 납득이 안돼도 상대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려는 입장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듯이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를 깎아먹고 있었다니...


적절한 자기 포지션을 형성하는 건 중요하다.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그 포지션을 너무 급격하게 바꿨다는 것이다. 선배들이 싹 다 떠나가면서 급격히 서열이 올라간 이유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속도조절을 했어야 했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직원이 회사에 불만사항을 얘기할 때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나 역시 퇴사를 명분으로 회사의 잘잘못과 개선 사항을 건의했다. 하지만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사측에서는 사냥이 끝난 사냥개처럼 나를 삶아버렸다.


연봉은 협상 개념이다. 원칙대로 하면 사용자와 노동자가 협의해 정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중소기업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동결되기 일쑤고 올려주면 감사하다며 넙죽 받아야 한다. 언론사이기에 협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돈문제에 있어서 논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근무를 더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회사에서는 다음날 그만두라는 통보를 했다. 열심히 일한 회사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는 자괴감도 들었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기쁘다고 위로했다. 이번에 많이 배웠으니 '다음 직장에서는 좀 더 현명해질 수 있겠지'하며 위안해본다.


그저 퇴근길에 궁금한 것을 물어봤는데 퇴사라니 역시 이번 생은 쉽지 않다.


이전 01화퇴사하고 남는 시간에 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