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직장을 준비한다고?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명함과 전화번호를 삭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개운하게 볼 일을 보고 화장실 문을 닫고 나온 그 기분. 말끔한 기분에다가 많은 사람들이 새로 만든 매거진에 관심을 보이니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새로 쓰는 글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아이템 선정이 쉽지 않다. 진짜 하고 싶은 거 다하려고 만든 매거진인데...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은 퇴사한 이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닮아 있었다. 글을 맘껏 쓰려고 판을 벌린 건데 관심을 받자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퇴사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부터 해야 하나'를 신경 쓰는 듯했다. 퇴사자들은 처음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때 모습과 달리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그 이유가 뭘까? 얼마 전 퇴사한 지 일주일 된 대학 동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이유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그는 5년을 다니던 회사에 나와서 그런지 하고 싶은 게 넘쳤다. 여행, 모임, 취미, 문화생활 등 그동안 못했던 것을 원도 한도 없이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한마디 했다.


크러쉬.png 크러쉬처럼 멍 때리는 것도 쉬는 방법 중 하나다 / MBC '나 혼자 산다'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재취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보려고 해. 영상편집도 하면 좋고 영어점수도 필요하고 할게 많네"

"일주일밖에 안됐잖아. 좀 쉬어도 돼. 여행 간다며? 그건 언제 하려고 하는데?"

"아 그러네. 재취업 준비 안 하면 불안할 거 같아서"


좀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상하기보다 이해가 잘 안 됐다. 얼마 전 퇴사했는데 다시 일할 준비를 한다는 게... 물론 퇴사한다고 쓰는 돈이 줄지 않는다. 세금도 내야 하고 각종 보험료에 통신비, 전월세, 기름값 등 쓸 돈이 많다. 부양가족까지 있다면 고정지출비용은 더 많다. 책임을 미루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퇴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퇴사 이유가 무색해질 정도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럴 거면 퇴사가 아니라 이직을 했어야지.


get-ready.png 전쟁을 할 때도 군인에게 충분한 휴식을 준다. 전쟁준비는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 이하 구글 이미지


멈추는 건 정지입니다. 심정지가 아니에요



'멈추면 뒤쳐진다는 생각, 쉬면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퇴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퇴사를 했다면 일정기간 동안 쉬었으면 좋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마찬가지다. "쉬려고 퇴사한다고? 죽으면 영원히 쉬는데 뭐하러 지금 쉬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이없었지만 "난 죽을 생각이 없어서 퇴사한다. 일하다 죽으면 산재처리밖에 안된다. 호상도 아닌데"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기계를 돌리거나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계도 일정기간 운행하면 잠시 기계를 끄고 쉬어야 한다. 하물며 사람인데...


퇴사를 생각할 정도라면 대부분 지칠 대로 지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전 직장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기간은 중요치 않다. 마음의 상처와 피로는 기간이 아니라 그 빈도와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 있다면 잠시만이라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길 권한다.


운동을 하는 선수들도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는다. 휴식 없이는 성과도,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직장 대부분은 휴식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휴식'을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사한 후 쉬는 게 중요하다. 강제로 쉴 수 있으니 제대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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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경쟁, 전쟁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한다. 하지만 실제 전쟁을 할 때도 중간중간 병사들에게 충분히 휴식을 준다. 전쟁 기간 내내 물자가 잘 보급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전쟁 준비는 항상 하는 것이다. 전쟁이 닥치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전투 한번 이겼다고 준비를 끝내는 것도 아니다. 정작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우리들은 보급선을 점검하지도 않고 물자를 확실하게 확보해놓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


퇴사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도, 패배자, 낙오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 길다. 좀 길게 봤으면 좋겠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죽는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라는 사람이 있다. 이게 맞는 사람들이나 이런 신조를 갖고 살아가는 거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따라 하다가는 과로로 쓰러진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쓸데없이 길어졌다. 사실 이 글의 주제는 하나다. '쉴 때 쉬라'. 이렇게 길게 쓴 건 사람들이 그리 쉽게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쉬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으니 이젠 어떻게 쉬면 좋은지 하나하나 풀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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