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생활 지침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날들이 지겨워질 무렵, 책이 눈에 들어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책을 멀리 한지 6개월 정도가 지났다. 마음먹고 책을 읽어 보려 했지만 텍스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영상에 길들여진 탓일까. 글자는 눈앞에 아른거리고 내용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가 독서 가이드인 지인이 새로운 모임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든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독서모임에 갔다. 우선 돈을 들이면 돈 아까워서라도 나갈 테니까.
마음으로 읽기
격주 책 읽기 모임에 등록하고 첫 모임이 있던 날, 책을 조금 읽고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장은 각자 모임에서 원하는 바를 점검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이나 책 읽기 방법 등을 추천했다. 그리고 멤버들이 서로 독려할 수 있도록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는 거라 쉬운 책이 좋을 듯싶었다. 평소 자주 읽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간 '죽음'을 샀다. 하지만 첫 장부터 난해한 느낌이 밀려왔고 30쪽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제 책이랑 끝일까'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책을 읽고 싶었지만 고민거리가 많았고 책이 안 읽히는 고민까지 더해졌다. 독서 가이드인 지인은 내 얘기를 듣고서 "그 상태면 책이 눈에 안 들어오지"라며 웃었다.
'결국 책 읽는 것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구나'
눈에 안 들어오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을 던져버리고 새 책을 집었다. 김영진 평론가의 '순응과 전복'이다. 순응과 전복이 죽음보다 더 낫거나 특별히 더 잘 쓴 건 아니었다. 김영진 평론가는 말을 어렵게 하는 편이다. 처음 책을 샀을 때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접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그 책이 끌렸다.
마음에 드는 책을 집었더니 예전에 눈에 거슬리던 문장, 나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의 글도 쉽게 읽혔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뭔가 배우고 대단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부담감으로 남아 책을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책은 유효하다. 만년 넘게 유행을 타지 않은 아이콘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다. 책은 검증된 정보다. 그래서 나는 그 정보와 권위에 목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욕심은 책 읽기를 하나의 미션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이 고되게 느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집에 쌓여있는 책이 예쁘게 보였다. 시간 내서 틈틈이 읽어야겠다. 오늘은 날이 좋다. 집 앞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사치를 부려봐야지.